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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 타브이신 예슈아 (창조의 안식일과 천년왕국의 만남)

주희 지원이 아빠 2025. 2. 9. 11:50

 

1. 알레프 타브이신 예슈아

 

예슈아께서는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 알레프와 타브이십니다. “알파”는 헬라어(그리스어)의 첫 번째 알파벳이며, 영어로는 “A (에이)”에 해당합니다. 히브리어의 첫 번째 알파벳은 “א (알레프)”입니다. 그리고 “오메가”는 헬라어의 마지막 알파벳이며, 영어로는 “Z (제트)”에 해당합니다. 히브리어의 마지막 알파벳은 “ת (타브)”입니다.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씁니다. 따라서 알레프-타브는 את 이렇게 씁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보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것은 그들이 생명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소유하게 하며 그 문들을 지나 그 도시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로다. 개들과 마법사들과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누구든지 밖에 있느니라. 나 예수는 내 천사를 보내어 교회들 안에서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후손이요 빛나는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장 12-16절, 킹제임스)

 

그리고 아래에서 보시는 것처럼 히브리어 원문에서 알레프 타브 (את)는 창세기 1장 1절에 하나님 우편에 등장합니다. 알레프 타브 (את)는 자체적인 뜻이 없기 때문에, 히브리어 원문에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알레프 타브 (את)는 처음과 마지막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실제로 창세기 1장 1절에서 보이는 것처럼 태초부터 아버지 하나님(엘로힘)의 우편에 숨어 계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장 1절의 기록대로 이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요한복음 1장 1절, 킹제임스)

 

또한, 요한계시록 1장 7절에서 예슈아를 묘사하는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라는 구절은 명백하게 스가랴 12장 10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보라, 그분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시느니라.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겠고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분으로 인하여 통곡하리니 참으로 그러하리로다. 아멘.” (요한계시록 1장 7절, 킹제임스)

 

스가랴 12장 10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주민들 위에 은혜의 영과 간구하는 영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나 곧 자기들이 찌른 나를 바라보고 사람이 자기 외아들을 위하여 애곡하듯 그를 위하여 애곡하며 사람이 자기의 처음 난 자를 위하여 몹시 슬퍼하듯 그를 위하여 몹시 슬퍼하리로다.” (스가랴 12장 10절, 킹제임스)

 

개역개정에서는 ""라는 단어가 빠지고 ""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는 잘못된 번역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스가랴 12장 10절은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대로 “그들이 나, 곧 자기들이 찌른 나를 바라보고”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스가랴 12장 10절에서 말씀하시는 화자인 "나"는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화자인 "나",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찔리셨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찔리신 적이 있습니까?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었던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시고 인간으로 오신 아들 예슈아께서 십자가에서 못에 찔리시고 창에 찔리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스가랴 12장 10절에서 여호와께서 찔리신 분이 바로 십자가에서 찔리시고 죽으신 예수님이심을 확증합니다. 즉, 예슈아께서는 십자가에 찔리실 수 있는 참 인간이시며, 동시에 스가랴 12장 10절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여호와이십니다. 요한복음 19장 37절은 스가랴 12장 10절이 예슈아의 찔리심을 가리킨다고 확정적으로 말씀합니다.

 

​“예수님께 이르러서는 그분께서 이미 죽은 것을 보고 그분의 다리를 꺾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군사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니 즉시로 거기서 피와 물이 나오더라. 그것을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의 증언은 참되니라. 그는 자기가 말하는 것이 참된 줄 아나니 이것은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니라. 이 일들이 이루어진 것은, 그의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 기록을 성취하려 함이더라. 또 다른 성경 기록이 다시 이르되, 그들이 자기들이 찌른 자를 보리라, 하느니라. (스가랴 12장 10절을 암시)” (요한복음 19장 33-37절, 킹제임스)

 

이것을 확증하듯, 스가랴 12장 10절에도 예슈아를 뜻하는 알레프 타브 (את)가 예슈아의 성품처럼 겸손하게 숨겨져 있습니다.

 

ושפכתי על בית דויד ועל יושב ירושלם רוח חן ותחנונים והביטו אלי את אשר דקרו וספדו עליו כמספד על היחיד והמר עליו כהמר על הבכור׃ (스가랴 12장 10절)

히브리어는 한자처럼 글자마다 그림과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א (알레프)는 지도자를 가리키며, 하나님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ת (타브)는 언약을 의미하며, 고대 히브리어에서는 두 개의 나무를 겹쳐 놓은 형태를 나타내어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예슈아께서 알파와 오메가, 즉 알레프 타브 (את) 이시라는 것은, 십자가 위의 하나님, 곧 삼위일체 제2위격이신 아들 하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을 암시합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의미하는 알레프 타브는 구약 성경 전체에 걸쳐 9,500번 이상 사용되며, 매우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알레프 타브는 특정 목적어 앞에 쓰이기도 하지만, 일정한 규칙 없이 성경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알레프 타브 자체에는 뜻이 없기 때문에 다른 언어로 번역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히브리어 원문 성경을 보지 않으면 어떤 문장에 알레프 타브가 쓰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영어 번역 성경이나 한글 번역 성경에서는 알레프 타브에 의미가 없기 때문에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문 성경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알레프 타브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상징하는 표식입니다. 알레프 타브는 겸손하게 숨어 있지만, 구약 성경 전체에 새겨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인장과 같습니다.

그리고 신약은 물론, 구약의 모든 말씀도 말씀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즉 알파와 오메가, 알레프와 타브이신 예슈아를 가리키고 있음을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이 확증합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주] 곧 [전능자]께서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마침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1장 8절, 킹제임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것은 그들이 생명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소유하게 하며 그 문들을 지나 그 도시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로다. 개들과 마법사들과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누구든지 밖에 있느니라. 나 예수는 내 천사를 보내어 교회들 안에서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후손이요 빛나는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장 13-16절, 킹제임스)

 

구약의 이사야서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주} 곧 그의 구속자인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니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이사야 44장 6절, 킹제임스)

 

“오 야곱아, 내가 부른 자 이스라엘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니라.” (이사야 48장 12절, 킹제임스)

 

그러므로, 알레프 타브이신 예슈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시며,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에게 계속해서 말씀해 오시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슈아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알레프 타브는 여호와의 히브리어 의미와 연결됩니다. 놀랍게도, 히브리어 원문에서 여호와의 이름은 십자가 사건을 직접 가리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히브리어로 표기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사용된 알파벳에 담긴 그림의 의미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즉 여호와 이름에 숨겨진 의미가 “손을 보라! 못을 보라!” 가 될 수 있으며 이것은 예슈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손을 암시합니다. 이 의미는 히브리어 원문을 살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숨겨진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름의 숨겨진 의미는 복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제 생각이 아니며 성경 자체가 증거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슈아의 신성을 드러낸 책입니다. 요한복음의 결론에 예슈아의 제자였던 도마가 예슈아의 못 박히셨던 손을 보고 예수님을 향하여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한복음 20장 27-28절)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책입니다. 요한복음에서 하이라이트는 “예슈아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도마의 최고의 고백이 나오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고백이 도마가 예슈아 손의 못 자국을 보는 장면에서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참조:

 

https://blog.naver.com/gksmh80/223700879879

 

예슈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육신을 입으신 여호와 하나님

1. 들어가는 글 유대인이신 예수님의 히브리어 원래 이름은 예슈아(ישׁוע) 입니다. 참고: 이 글에서는...

blog.naver.com

 
 
 

말씀 자체이신 예슈아께서는 직접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모세와 모든 대언자들의 글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 기록들에서 자기에 관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 설명해 주시니라.” (누가복음 24장 27절)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여전히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말들 곧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과 시편에 나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리라 한 말들이 이것들이라, 하시고” (누가복음 24장 44절)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 (요한복음 5장 39절)

 

그러므로 성경을 올바로 읽는다는 것은 성경에서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이며, 이는 위대한 신학자나 목사님의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므로 100% 확실하여 논쟁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에게 신약은 물론, 구약에서도 반드시 아버지 하나님의 품에 숨어 계신 아들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슈아를 발견하게 하십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성경의 모든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으며, 그분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영적으로 눈이 먼 상태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만약 성경을 읽으면서 예슈아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교훈만 발견하고 있다면, 내가 거듭난 상태인지, 성령 하나님을 통해 성경을 읽고 있는지 의심해야 합니다. 예슈아께서 계시는 사람에게는 아버지 하나님도 함께 계시지만,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계속 외친다고 해서 예슈아께서 마음 중심에 계시지 않는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계시지 않는 것이며 결국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죄를 지으며 그리스도의 교리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없고 그리스도의 교리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아버지와 아들이 둘 다 있느니라." (요한이서 9절)

 
 
 
 
 

2. 창조의 안식일과 천년왕국의 만남

 

성경 말씀이 곧 예슈아이므로, 성경이 예수님께서 처음과 마지막이심을 암시하는 것처럼, 성경 말씀의 처음과 끝을 보면 대칭 구조를 이루며, 성경 전체가 대칭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전에 아래 블로그 글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성경은 처음과 마지막이 대칭을 이루는 키아즘 구조(chiastic structure), 즉 교차 대구법의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관련 링크:

 

https://blog.naver.com/gksmh80/223015598302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에 대하여

1. 서론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blog.naver.com

 

 

 

교차 대구법이라는 표현이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복잡한 개념은 아닙니다. 쉽게 설명하면, 성경 말씀에서 A에 관한 구절이 나오고, 그다음에 B에 대한 구절이 나온다면, 그다음에는 A와 대칭되는 구절이 아니라 B와 대칭되는 구절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A와 대칭되는 구절이 나오는 형식입니다. 즉, 데칼코마니처럼 A-B-B'-A'와 같은 구조를 이루는 것입니다. 물론 더 복잡한 형태도 있지만, 간단한 예로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 (A)로서 먼저 되고 (B) 먼저 된 자 (B')로서 나중 되리라 (A') (마태복음 20장 16절)​​

유일한 구원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거룩한 책인 레위기는, 책 전체가 복잡한 교차 대구법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성경이 교차 대구법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직접 확인해 보시면 더욱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도 교차 대구법의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계시록의 기록을 통해 교회가 일곱 등잔대, 즉 구약에 등장하는 성전에 있는 메노라와 관련이 있음을 직접 암시하십니다. 그리고 예슈아께서는 교회를 암시하는 일곱 등잔대의 한가운데 계십니다.

 

“그 일곱 등잔대 (λυχνία, luchnia, 구약의 메노라)한가운데 (헬라어 원어: μέσος, 뜻: 한가운데, midst)사람의 [아들] (예슈아) 같으신 분께서 발까지 내려온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두르고 계시더라.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같이 희고 눈같이 희며 그분의 두 눈은 불꽃 같고 그분의 두 발은 용광로에서 달군 듯한 정제된 놋 같으며 그분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그분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이 있으며 그분의 입에서는 양날 달린 날카로운 칼이 나오고 그분의 용모는 해가 세차게 빛나는 것 같더라. 내가 그분을 볼 때에 죽은 자같이 그분의 발 앞에 쓰러지니 그분께서 오른손을 내 위에 얹으시며 내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요한계시록 1장 13-17절, 킹제임스)

 

아래는 교차 대구법 구조로 이루어진 일곱 교회를 나타낸 그림입니다. 이는 교회를 의미하는 일곱 등잔대인 메노라의 모습을 통해, 일곱 교회가 교차 대구법의 구조로 되어 있음을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예슈아께서는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등잔대인 메노라의 한가운데에 계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이르시기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곧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필라델피아,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라, 하시더라. 내가 돌아서서 나와 말씀하신 그 음성을 알아보려 하니라. 돌아설 때에 내가 일곱 금 등잔대를 보았는데 그 일곱 등잔대의 한가운데 (헬라어 원어: μέσος, 뜻: 한가운데, midst)에 사람의 [아들] 같으신 분께서 발까지 내려온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두르고 계시더라.” (요한계시록 1장 11-13절, 킹제임스)

 

일곱 등잔대 위에 창세기 1장 1절의 히브리어 원문 7글자를 배열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정말 알레프 타브이신 예슈아께서 메노라의 한가운데 계십니다!!!

 

사람의 실력으로는 바로 다음에 일어날 일조차 알 수 없기 때문에,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슈아께서 '처음과 마지막', '알레프와 타브'이심은 그분이 모든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시며, 미리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에 역사의 처음부터 끝을 선포하시고 처음과 끝을 연결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암시합니다.

 

내가 처음부터 결말을 밝히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들을 옛적부터 밝히 알리고 이르기를, 나의 계획이 설 터이니 내가 나의 기뻐하는 일을 모두 이루리라, 하였노라.” (이사야서 46장 10절)

다시 말씀드립니다. 성경 전체는 사람의 생각으로 도저히 쓸 수 없고 성경말씀은 전지전능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작품이자 예슈아 (알레프 타브 (את))이신 것을 공표하듯 놀랍게도 처음과 끝이 만나는 교차 대구법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처음과 끝은 맞닿아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처음과 끝은 서로 연결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처음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성경의 마지막을 해석하는 방식이 결정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진화론에서는 세상이 점점 좋아졌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반대로 가르칩니다.

 

세상은 처음에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 세상은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인 노아의 홍수가 일어났고, 그 결과 추위와 더위가 생기게 되었으며 (창세기 8:22), 육식이 시작되면서 (창세기 9:3-4) 사람들이 살기에 더욱 어려운 환경이 되었습니다. 그 후, 사람들이 바벨탑을 세워 하나님께 대적하자, 하나님께서 세상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고, 이로 인해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더욱 불편하고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으셨던 것처럼, 성경의 마지막에서도 모든 것이 회복되어 처음보다 더 좋은 상태가 됩니다. 즉, 처음과 마지막이 좋은 상태로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세상이 창조된 후, 노아의 홍수 이전까지 사람의 수명이 900세까지 길었던 것처럼, 이에 짝을 이루는 천년왕국에서도 사람의 수명이 늘어나 100세가 어린아이의 나이로 여겨지며, 나무의 수명과 같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뻐하며 내 백성을 기뻐하리니 슬피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다시는 그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라. 날수가 많지 않은 어린 아기나 자기의 날들을 채우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거기에 없으리니 아이가 백 세에 죽으리라. 그러나 죄인은 백 세가 되어도 저주받은 자가 되리라. 그들이 집을 지어 거기에 거주하고 포도원을 세워 그것의 열매를 먹으리라. 그들이 짓되 다른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며 그들이 심되 다른 사람이 먹지 아니하리니 내 백성의 날수는 나무의 날수와 같으며 나의 선택한 자는 자기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리리라.” (이사야 65장 19-22절)

 

성경의 처음 부분인 창세기 2장에는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신 후,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일을 마치시고 자신이 만든 모든 일에서 떠나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히 구별하셨으니 이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며 만든 자신의 모든 일을 떠나 안식하셨기 때문이더라.” (창세기 2장 2-3절)

 

성경의 마지막 부분인 요한계시록 20장에는 천년왕국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마귀요 사탄인 그 용 곧 저 옛 뱀을 붙잡으니라. 그가 그를 붙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바닥없는 구덩이에 던져 넣어 가두고 그 위에 봉인을 하여 천 년이 차기까지는 그가 더 이상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니라. 그 뒤에는 그가 반드시 잠시 동안 풀려나리라. 또 내가 보니 왕좌들과 그것들 위에 앉은 자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심판이 맡겨졌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인 자들의 혼들이 있는데 그들은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자기들의 이마 위에나 손 안에 짐승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더라. 그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통치하되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였더라. 이것은 첫째 부활이라.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권능을 갖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로다. 그 천 년이 다 차매 사탄이 자기 감옥에서 풀려나고” (요한계시록 20장 2-7절)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경 말씀은 예슈아이므로,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알레프 타브이신 예슈아처럼, 성경의 처음과 끝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처음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성경의 마지막을 해석하는 방식이 결정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상징적으로 해석하며, 거짓된 진화론을 억지로 성경에 접합시켜 유신진화론이나 점진적 창조론 등을 믿는 자들은 종말론에서도 결국 넘어지게 됩니다.

 

#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노파심에 말씀드립니다. 저는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인류 7,000년 역사의 마지막에 천년왕국이 끝나면서 사탄이 풀려나 사람들을 미혹하게 되고, 마지막 곡과 마곡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 후, 불신자들을 심판하기 위한 마지막 예슈아의 백보좌 심판이 있으며, 그 이후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지구상의 7,000년 역사의 처음과 끝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하신 후, 창세기 2장에서 하루 동안 안식하신 것이,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예슈아와 그의 성도들이 다스리는 1,000년의 안식의 역사와 연결된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자적인 6일 창조와 하루 안식을 믿지 못하면, 문자적인 천년왕국을 믿기가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성경의 처음인 창세기 1장에서 창조된 에덴동산의 복락과 마지막인 요한계시록 21장, 22장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 즉 영원한 복락의 상태가 서로 연결됩니다. 세상의 7,000년 역사, 마지막 곡과 마곡 전쟁, 백보좌 심판, 그리고 영원한 천국에 대한 시간표는 아래 제 이전 글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gksmh80/223168260026

 

요한계시록 해석의 원칙과 전체 내용의 요약

• 이 내용은 Oxford Bible Church 의 Derek Walker 목사님의 책 A Chronological Commentary on t...

blog.naver.com

 

https://blog.naver.com/gksmh80/223503390650

 

요한계시록 7년 환난의 타임라인: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심판의 시간 순서

서론: 요한계시록은 예수님 재림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성령님께서 점진적으로 그 의미를 열어주시는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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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6일 창조와 하루 안식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셨다고 믿는 사람들은, 성경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천년왕국 또한 문자 그대로 해석합니다. 즉, 예슈아께서 이 땅의 예루살렘에서 1,000년 동안 통치하시며, 이 지구에 안식의 1,000년이 이루어진다고 해석합니다. 반면, 창세기의 6일 창조와 하루 안식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6일을 매우 긴 시간으로 이해하는 유신진화론적 또는 다중 격변론적 관점을 따르는 경우, 성경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천년왕국도 상징적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이러한 해석 방식은 결국 무천년주의 (Amillennialism)를 따르게 됩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gksmh80/223726575822

 

전천년주의 환난 전 휴거가 성경적인 이유-파트 1

먼저, 이 글은 제가 확신하는 바를 다시 한번 정리하여 잊지 않기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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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의 관점에서는 성경이 천지 창조 이후 현재까지 약 6,000년의 역사가 흘렀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루를 천 년으로 계산하는 것에 대한 힌트를 남겨두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 사실에 대하여 무지한 자가 되지 말라.

 

참조: 

https://blog.naver.com/gksmh80/222782174675

 

 

6일 창조와 6000년 역사 그리고 1일 안식일과 1000년 왕국

세상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종말의 징조들이 넘치는데 언제까지 성경의 마지막때 예언들과 예수님의 재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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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하루를 천년으로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에 안식하셨던 것처럼, 이 세상이 6,000년의 고통과 구원의 역사를 지나 1,000년의 안식의 기간에 들어간다면, 이는 성경 말씀대로 처음부터 마지막을 예언하신 것이 되어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이사야 46장 9-10절)

 

그리스도와 교회가 다스리는 이 천년왕국은 사탄이 활동하지 못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6,000년 동안 고난과 슬픔으로 점철된 인류의 역사와 대조되는 참된 안식의 기간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천년왕국은 창조 기사에 등장하는 '6일 동안의 창조'와 '7일째 안식'의 구조와 평행을 이루며, 7일째 안식일에 해당하는 역사적 기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천년왕국은 사탄이 왕으로 군림하며 불경건한 사람들이 다스려왔던 지난 6,000년의 인류 역사와는 완전히 구별되는 기간입니다. 이는 창조 이야기의 7일째 안식일에 해당하는 실제 역사의 기간이 '1,000년'일 것임을 요한계시록 20장이 확정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머지 창조 6일 또한 하루를 1,000년으로 보는 견해가 타당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천년주의는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을 상징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름다운 질서를 무질서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무천년주의는 성경에 나오는 숫자들을 상징적으로 보기 때문에,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문자적인 6일 창조도 매우 긴 시간으로 해석하는 유신론적 진화론을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신론적 진화론은 사탄의 거짓말이며, 그것이 성경 말씀을 얼마나 훼손하는지는 제 최근 블로그 글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gksmh80/223745098933

 

성경적 창조의 증거 (7박 8일간의 창조과학 탐사를 마치며..)

1. 진화론은 거짓: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창조론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믿음 체계입니다.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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