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회의 배도
“보라,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있는데, 보라, 내가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경배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리라.” (요한계시록 3장 9절)
이스라엘이 독립하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전쟁들을 통해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로마 가톨릭을 비롯하여 WCC, WEA, NCCK 등에 적극 협조하는 타락한 교회들은 반유대주의적인 대체신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WEA는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본질적으로 로마 카톨릭과의 일치 및 종교 통합을 추구하는 배교적 집단입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7407
“WEA 지도자들, 시간 흐를수록 다원주의로”
2025 WEA 서울총회개최반대연합회 기자회견이 3월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예장 합동 총회회관 로비에서 개최됐다. 연합회장 맹연환 목사는 “총회 안에서도 WEA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시는 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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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p0eyBAHokl4
작년에는 로잔대회에 대해 비판한 바 있으며,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모든 재앙과 위기는 한국 교회의 배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https://blog.naver.com/gksmh80/223594033846
로잔 대회 문제점 (진리가 약해진 시대)
현대 교회는 진리보다는 사랑을 강조합니다. 사랑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교회의 가장 중요한 본질임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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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sado1235/223826361425
한국교회여! 배도의 죄를 회개하라!(WCC.WEA.NCCK)
현재 대한민국의 위기는 한국교회의 배도에서 온것입니다 ! 일제시대였던 1938년 9월 조선의 모든 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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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gksmh80/223690471250
교회의 배도 (파트 2) 대한민국에 임한 저주
저는 예수님과 교회, 그리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평신도로서, 대한민국과 교회가 잘되기를 간절히 바랍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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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로잔대회에 그치지 않고, 오는 2025년 10월 27일에는 한국에서 WEA 총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작년 2024년 10월 27일에는 차별금지법 반대라는 명분으로 교회를 모았고, 이제는 WEA 개최를 명목으로 교회를 모으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chriskang_/223823516850
음녀 WEA와 금송아지 1027의 가증한 콜라보. 2025년 WEA 집회 일시 = 2025.10.27. 사랑의교회와 여의도순
2025년 WEA 집회 일시 = 2025.10.27 2016년 깨어있는 한국교회의 반발로 WEA 총회가 무산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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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원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스라엘이 바알 숭배로 인해 멸망한 역사는 이를 명백히 보여줍니다. 우상 숭배는 겉으로 보기에 현실 세계에서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고 단순히 다른 신을 섬기는 종교 행위로만 보일 수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사람을 해치거나 사회 질서를 즉시 붕괴시키는 일이 아니기에, 물리적인 시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관점에서는 우상 숭배가 하나님을 배신하는 가장 심각한 죄이며, 그 죄의 결과는 결국 눈에 보이는 형태로 이 땅 위에 온갖 재앙과 저주를 가져오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에서 하늘의 인이 떼어지거나 나팔이 불리고 대접이 쏟아지는 일들은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영적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 영적 사건들은 이 땅에 실제로 물리적이며 가시적인 재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려고 준비하더라.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 위로 쏟아지니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타고 푸른 풀이 다 타더라.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니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며” (요한계시록 8장 6-8절)
대부분의 경우, 우상 숭배는 즉각적인 물리적 피해가 없기에 영적 감각이 없거나 무딘 사람들은 그 심각성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땅에서 지은 죄는 하늘에 상달되고, 결국 그 죄에 합당한 결과와 저주가 땅으로 다시 내려오게 됩니다.
지난해 9월 한국에서 로잔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영적 행사가 지금 대한민국에 가져온 결과들을 살펴보면, 과연 이 행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저주를 초래한 것인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로잔대회 이후 2024년 10월 27일에 열린 한국 교회 연합 예배에서는 차별금지법을 막자고 모였으나, 그 이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탄핵당하였으며, 현재 차별금지법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세력이 한국의 정치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 일이 단순히 우연일까요?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겉으로는 거룩함을 가장하면서도 뒤로는 바벨론의 음녀인 로마 카톨릭과 영적 음행을 하고, 이 행위를 주도하는 이들이 대한민국 교회의 지도자들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에서, 참된 회개 없이 단지 형식적으로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리 없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재앙과 혼란은 바로 한국 교회의 영적 타락이 낳은 열매입니다.
대한민국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과분한 지도자 이승만 대통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기적적으로 탄생한 나라이며, 기도의 힘으로 견고히 세워졌습니다. 즉 선교사님들께서 전해주신 성경 말씀과 기독교가 한국을 살렸습니다.
우리나라의 초대 영부인이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며, 이는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아내가 유대인이었던 인물이 과연 몇 명이나 있었겠습니까?
https://namu.wiki/w/%ED%94%84%EB%9E%80%EC%B2%B4%EC%8A%A4%EC%B9%B4%20%EB%8F%84%EB%84%88
프란체스카 도너
대한민국 의 제1-3대 이승만 대통령 배우자 .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 중 유일하게 외국인이다. 생애
namu.wiki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에 풍성한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https://blog.naver.com/gksmh80/223557719609
대한민국을 살린 기독교
대한민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못살고 비참하며 평균 수명이 짧은 나라였다가 지금의 놀라운 풍요와 경제 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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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스라엘이 다윗 왕조 시절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번영하다가 점차 배교하여 멸망했던 것처럼, 대한민국 역시 동일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올해 10월 예정된 WEA 총회라는 또 하나의 배교 간음 행사가 가져올 영적 열매를 생각하면 깊은 슬픔과 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배도한 교회의 지도자들이 현재 한국 교회의 종교 지도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이는 마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간교합니다. 로마 가톨릭을 위시하여 그와 영적 간음을 행하는 많은 교회들은 의도적으로 사랑과 용서, 화합, 겸손과 같은 메시지를 중점적으로 강조해 왔습니다. 성도들 역시 그러한 메시지를 선호했으며, 이는 인본주의적 시대정신과도 잘 부합하였습니다. 사랑과 용서, 화합과 겸손은 교회에서 가장 귀하고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진리를 약화시키고 주로 이러한 주제들로 치우쳐 왔습니다. 따라서 진리가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하면, 오히려 다른 사람을 정죄하거나 사랑이 부족하고 교만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교회에서 진리를 외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어 왔습니다.
현재 교회가 WCC, WEA, 그리고 NCCK에 속하여 로마 가톨릭과 연합을 추구하는 것은, 예수님 외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며, 이는 영적 간음에 해당합니다.
사탄은 WCC가 그동안 종교 다원주의의 정체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에, 더 이상 사람들이 속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여 이제는 보다 온건하게 보이는 WEA로 노선을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 외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 다원주의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이 과연 비본질적인 문제일까요? 만약 기독교의 비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면 저는 반드시 사랑과 용서와 화합을 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본질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WCC, WEA, NCCK와 연합을 추진하는 로마 가톨릭은 바로 이 핵심 진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아래 영상은 로마 가톨릭이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FfTxwTX34&t=10s
기독교와 성경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어서 그것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하여야 한다고 하는 것은 사랑이 없고 교만하며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우상을 숭배하여 멸망해가는 이스라엘을 향해 회개와 심판의 메시지만을 주로 외쳤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같은 구약의 선지자들은 가장 사랑이 없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진리가 없는 곳에서는 진정한 사랑 또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로마 가톨릭이나 WCC, WEA, NCCK와 같은 단체들이 종교 다원주의나 에큐메니컬 운동을 포장할 때는 항상 생명, 정의, 평등, 평화, 인권 등 정의롭고 고귀해 보이는 문구들을 앞세웁니다. 또한, 그러한 정의로워 보이는 문구들은 정의롭고 거룩하며 선해 보이는 표정이나 행동과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이 운동이 옳고 좋은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https://pckworld.com/article.php?aid=10475926436
에큐메니칼 가치 지키며 '생명 정의 평화' 구현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협력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생명, 정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힘써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김종생)가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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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은 눈속임일 뿐이며, 영적으로 보면 예수님을 짓밟고 우상 숭배라는 사악한 짓을 하는 것이며,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위선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 카톨릭인 이세벨과 간음하는 두아디라 교회에게 자신은 겉모습이 아니라 속마음을 보시고 심판하신다고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또 내가 사망으로 그녀의 자녀들을 죽이리니 그리하면 모든 교회가 나는 곧 속 중심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리라. 또 내가 너희 행위에 따라 너희 각 사람에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장 23절)
참조: https://blog.naver.com/gksmh80/223888184813
요한계시록 해석-2장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
요한계시록 2장 (1) 에베소 교회: 일곱 교회 중 첫 번째 교회인 에베소 교회는 대략 AD 33년경부터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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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이 마지막 때에, 이들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깨어있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을 배신하는 행사를 또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단지 이들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배도한 교회들과 달리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는 참된 교회에 대해 앞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차별적으로 대우하실지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2. 예수님의 참된 신부, 빌라델비아 교회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은 예수님께서 현재의 교회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직접 주시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현재 은혜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들에게 가장 중요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 여섯 번째로 등장하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휴거에 대한 약속을 받은 가장 귀한 교회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며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니 그가 열면 아무도 닫지 못하고 그가 닫으면 아무도 열지 못하느니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지 못하리라. 네가 적은 힘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3장 7-8절)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위의 구절에 나오는 ‘내 말을 지키며’에서 ‘지키며’의 원어는 그리스어 ‘테레오(téreó)’입니다. 이 단어는 ‘지키다’, ‘보호하다’, ‘간직하다’, ‘명령을 따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성경 말씀의 진리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말씀이 곧 예수님이시므로, 성경 말씀을 목숨처럼 사랑하며, 성경 말씀에 전혀 오류가 없음을 굳게 믿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전부 하나님의 말씀으로 순수하게 믿고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신부인 빌라델비아 교회는 하나님의 6일 창조, 노아의 홍수, 그 외에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들을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때의 휴거와 대환난 등, 본 적이 없고 자기 생각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도 성경의 기록대로 순수하게 믿으려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성경 말씀의 높은 권위 앞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불경건하게 자신의 잘못된 생각으로 성경을 대충 상징적으로 해석하면서,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를 훼손하고 사람들의 믿음을 약화시키는 행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위의 요한계시록 3장 7-8절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하신 말씀처럼, 빌라델비아 교회는 종교다원주의 교리를 배격하며 로마 카톨릭이나 WCC, WEA, NCCK를 거부하고 오직 예수님만을 외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위의 요한계시록 3장 7-8절 말씀을 보면, 빌라델비아 교회가 '적은 힘을 가졌다'고 쓰여 있는데, 이것은 예언적인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재림이 가까운 시점에, 예수님의 참된 신부인 교회가 소수이며 영향력이 적어질 것을 이미 알고 계셨고, 그것을 예언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시점에 빌라델비아 교회는 소수일 것이라는 점을 짐작해 볼 수 있으며, 이는 정확히 지금 이 시대를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특징은, 아래 예수님의 말씀처럼, 교회가 곧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대체신학을 거부합니다.
“보라,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있는데, 보라, 내가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경배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리라.” (요한계시록 3장 9절)
참조: https://blog.naver.com/gksmh80/223888986554
요한계시록 해석-3장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5) 사데 교회: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중 다섯 번째인 사데 교회는 대략 AD 1517년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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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카톨릭과 연합하여 종교 통합의 길로 가는 교회나 신학교는 거의 예외 없이 대체신학을 따릅니다. 그 이유는 로마 카톨릭의 핵심 교리 자체가 이스라엘을 카톨릭 교회가 대체했다는 사상에 기반하고 있으며, 반유대주의 또한 그들의 중심적인 가르침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으므로 이제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님의 택한 민족이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종교 통합을 거부하고 WCC, WEA, NCCK와 같은 단체를 반대하며 오직 예수님만을 따르는 귀한 교회들 가운데에도 대체신학을 주장하는 곳이 분명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와 타락한 교회들 사이에 명확한 차이를 두고 말씀하셨던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구별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바로 교회가 이스라엘, 즉 유대인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참된 교회라면 정도의 차이는 분명 있을지라도,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체신학의 잘못된 점을 어느 정도 분별하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대체신학은 본질적으로 반유대주의적인 신학입니다. 이 신학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았고, 그 자리를 교회가 대체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대체신학을 따르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이스라엘"이라고 기록된 많은 부분을 문자적인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교회로 바꾸어 해석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결국 교회가 곧 이스라엘, 즉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자들을 향해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이며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하나 실상은 유대인이 아닌 자들"이라고 경고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9절).
따라서 이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종말론적 계획에서 더 이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1900년 만에 기적적으로 재건된 오늘날의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아무 의미 없는 단순한 우연에 불과하며, 현재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전쟁 역시 우연한 사건일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재림과 교회의 휴거를 알리는 여러 징조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분명한 징조는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교회가 보고 깨달을 수 있도록 정하신 마지막 때의 분명한 시간표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나오는 마태복음 24장 32-34절과 마가복음 13장 28-30절에서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는" 사건의 시작이 바로 1948년 이스라엘 독립이 되겠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마태복음 24장 32-34절)
또한, 위의 구절에서 “이 세대가 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라는 말씀은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 세대가 가기 전에"라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이스라엘이 독립한 1948년에 이스라엘 본토로 돌아온 그 세대가 사라지기 전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48년에 태어난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한 세대는 한 사람의 수명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1948년생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한 사람의 수명을 70세에서 80세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948년생의 한 세대가 끝나가고 있으므로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것입니다.
또한 이번 이스라엘 전쟁과 이란의 핵시설 파괴 사건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이는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교회의 휴거가 매우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가장 확실한 사인입니다.
참조: https://blog.naver.com/gksmh80/223642455152
이스라엘 전쟁과 세상의 마지막 Part 1 (시편 83편과 에스겔 38장 곡과 마곡의 전쟁)
*대충 읽을 글의 내용이 아니므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분들만 읽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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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gksmh80/223899676529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과 성경 예언의 성취 (곡과 마곡 전쟁의 서막)
*모든 성경 말씀은 킹제임스 성경에서 인용하였습니다. 2025년 6월 13일 새벽,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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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장 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나아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게 될 것이며, 자신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그들로 알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위의 계시록 3장 8절과 9절에 따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로마 가톨릭 및 그와 같이 타락한 교회들이 종교 다원주의와 스스로 유대인이라 주장하는 대체신학을 거부하고, 진정한 성경적 신앙을 지키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결국 종교 다원주의와 대체신학을 따르는 교회들은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게 될 것이며, 빌라델비아 교회가 옳았고 예수님의 참된 사랑을 받는 교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는 예수님의 참된 사랑을 받은 빌라델비아 교회와, 교회의 탈을 쓰고 종교 다원주의에 동조하고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사탄의 회당 사이에 명확한 구분을 드러내는 사건이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현재는 종교 다원주의에 동조하고 대체신학을 주장하는 자들이 더욱 강력하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건을 통해 이 두 그룹 간의 극단적이고 명확한 차이가 드러나게 될까요? 이에 대한 답은 요한계시록 3장 9절의 바로 다음 절인 10절에 나와 있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 (요한계시록 3장 10절)
즉,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시험의 시간’을 피할 수 있는 휴거의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은 아직 없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세계적 사건들도,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시험의 기간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분명 온 지구상에 임할 대재앙인 7년의 환난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 기간이 ‘시험하는 시간’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를 것인지, 아니면 짐승의 표인 666을 받을 것인지에 대해 시험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에 관해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천사가 그들을 뒤따르며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그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고 자기 이마 안에나 손 안에 그의 표를 받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즙 곧 그분의 격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즙을 마시리라. 그가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으리니 그들의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이나 낮이나 안식을 얻지 못하리라.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나니 곧 여기에 [하나님]의 명령들과 예수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4장 9-12절)
참조: https://blog.naver.com/gksmh80/223906830634
요한계시록 해석-14장 (대환난기, 구원과 심판의 추수)
요한계시록 14장 요한계시록 11장에서 일곱 번째 나팔은 대환난의 시작을 알리며, 이때 이스라엘 안에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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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대환난기가 시작되면, 환난기에 예수님을 믿게 된 성도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행위로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은혜의 시대이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7년 환난기, 특히 마지막 후반부 3년 반인 대환난기는 ‘믿음의 시험 기간’이며, 이 시기에는 ‘짐승에게 경배하거나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명백한 계명이 주어집니다. 따라서 그때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짐승의 표를 거부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내어놓을 수 있는지를 시험받게 됩니다. 이 시험은 지극히 두렵고 고통스러운 것이기에, 예수님께서는 환난 이전에 신실하게 믿음을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에게는 바로 이 시험의 때를 피하도록 휴거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0절).
또한 두아디라 교회에게 이세벨 (로마 카톨릭)과의 간음을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 속에 던져 넣겠다고 경고하신 것은, 대환난기 가운데서 시험을 통해 구원을 얻는 과정이 매우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러한 경고를 주신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보라, 내가 그녀를 침상에 던져 넣을 것이요 그녀와 함께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자기 행실을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속에 던져 넣을 것이며” (요한계시록 2장 22절)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는 아직 은혜의 시기이므로, 가장 중요한 일은 진실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다가올 시험의 때를 피하도록 휴거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서 계획적으로 배열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빌라델비아 교회가 예수님의 말을 지키며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계시록 3장 8절). 그리고 이어서 대체신학을 따르는 자들이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무릎을 꿇게 될 일을 말씀하시고 (계시록 3장 9절), 곧이어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휴거의 약속을 제시하십니다 (계시록 3장 10절). 이는 휴거라는 사건을 통해 이 두 집단 간의 명확한 차이를 드러내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교회의 휴거가 일어날 때, 세상의 모든 사람은 비로소 누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었으며, 어떤 교회가 예수님의 참된 사랑을 받은 교회였는지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구약 성경인 말라기서에도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라기 3장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 (휴거의 명단)에 기록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 (휴거의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위 구절들이 왜 휴거를 암시하고 있는지에 대한 더욱 상세한 해석과 설명은 제 이전 블로그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gksmh80/222819133061
나팔절과 휴거와의 연관성 part 1
창세기에 하나님은 창조 넷째 날 해와 달로 약속된 시간을 의미하는 절기를 정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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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지 못하리라. 네가 적은 힘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있는데, 보라, 내가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경배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 (요한계시록 3장 8-10절)
그러므로 종합하면, 위의 구절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오직 예수님을 외치며 종교 다원주의를 따르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또한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고 주장하며 이스라엘을 교회에서 지우려 하는 대체신학을 따르는 자들과는 달리,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존중합니다. 이들은 구약의 여호와의 절기와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때의 예언들을 현재 이스라엘의 상황과 연결하여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깨닫고, 시대를 분별하며 깨어 있는 신앙을 갖게 됩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을 참되게 믿고 마지막 때에 깨어 있는지 여부는 그 사람이 진정으로 거듭났으며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따라서 마지막 때에 오직 예수님을 외치며 시대를 분별하고 깨어 있는 것은 거듭남의 증거이며, 휴거 때에 들림을 받을지 아니면 이 땅에 남겨질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래의 구절들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어둠에 속하지 않은, 곧 거듭난 교회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 도둑같이 임하지 않지만, 깨어 있지 못한 교회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이 갑작스럽게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 속에 있지 아니한즉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를 덮치지 못하리라. 너희는 다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니라.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리자.” (데살로니가전서 5장 4-6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고 들었는지 기억하고 굳게 붙잡아 회개하라. 그런즉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네게 이르리니 내가 어느 시각에 네게 이를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요한계시록 3장 3절)
“그러므로 너희가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피하고 사람의 [아들] 앞에 서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지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장 36절)
결국 휴거가 일어날 때, 대체신학을 따르던 자들은 자신들이 틀렸음을 깨닫고 놀라게 될 것이며, 빌라델비아 교회가 옳았고 예수님께서 그 교회를 사랑하셨음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참조: https://blog.naver.com/gksmh80/223821611460
휴거에 대하여 (휴거의 조건과 특징) Part 2
4.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를 통해 살펴보는 휴거될 자와 남겨질 자의 차이 특히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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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회가 잊어버린 여호와의 절기
오늘날 교회는 이스라엘을 신학적으로 지워버렸기 때문에, 앞으로 지상에 세워질 천년왕국이나 이스라엘이 지키고 있는 여호와의 7대 절기 등에 관해 무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이스라엘을 지우려 할 것을 이미 미리 아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오직 이스라엘을 존중히 여기며 유대인들을 향해 겸손한 마음을 가진 성도들만이, 지금이 마지막 때이며 예수님의 재림과 교회의 휴거가 매우 임박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데 교회에 하신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경건의 모양은 갖추었으나 무천년주의와 대체신학을 주장하는 오늘날 많은 개혁주의 계열의 교회들이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에게 진정한 영적 생명이 없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말씀 중심의 외적 신앙 형태는 유지하고 있지만,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진정으로 거듭난 상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개혁주의 계열의 교회 안에도 거듭난 성도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계시록 3장 4절]). 이와 같은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개혁주의 교회의 모습을 상징하는 사데 교회를 향해 너희는 죽어 있으므로 영적으로 깨어서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또한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면 주님께서 언제 갑자기 오실지 결코 알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고 들었는지 기억하고 굳게 붙잡아 회개하라. 그런즉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네게 이르리니 내가 어느 시각에 네게 이를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요한계시록 3장 3절)
아래 영상은 존경하는 존 맥아더 목사님의 무천년주의 종말론을 비판하는 영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GhjaUqS6To&t=477s
지금까지 여러 교회를 다니며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오늘날의 교회가 구약 성경에 기록된 유대 문화와 절기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주요 이유는 교회의 오랜 원수인 로마 카톨릭이 교회 역사 속에서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의 존재를 지워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레위기 23장에 기록된 여호와의 절기들, 즉 이스라엘 민족이 현재까지도 지키고 있는 명절들을 교회에서 간과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다양한 이단들이 이 거룩한 여호와의 절기들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문자적으로 유월절 바로 그날에 십자가에 달리셨고, 유월절과 동일하게 여겨지는 무교절에 장사되셔서 죄를 제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초실절 바로 그날에 정확히 부활하셨으며, 오순절 바로 그날에 성령님께서 예루살렘에 강림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재 교회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인 유월절을 기념하지 않고, 유월절과 보통 날짜상 겹치지 않는 로마 가톨릭의 전통인 사순절 (Lent)이나 고난 주일 (성지 주일, Palm Sunday)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순절과 고난 주일은 명백히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에서 비롯된 절기이며,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확정된 부활절 산정 방식에 따라 날짜가 결정됩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정확히 초실절에 기념하지 않고, 대신 로마 가톨릭의 전통적인 계산법인 "춘분 이후 첫 보름달 다음의 일요일" 방식을 사용하여 이교도의 전통에서 유래된 부활절을 따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오순절은 초실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인데, 대부분의 경우 부활절과 초실절의 날짜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는 실제 오순절과는 다른 날짜에 성령 강림절을 기념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및 오순절은 유대인의 전통이 아니며 성경 레위기 23장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절기입니다. 맑은 정신으로 생각해 봅시다. 성경을 따르는 것이 옳습니까, 아니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 옳습니까? 로마 카톨릭은 교회의 큰 집이 아니며 바벨론 종교와 기독교를 합친 이단 중의 이단이며 요한계시록 2장에 두아디라 교회에 나오는 이세벨이며 바벨론 음녀의 영을 이어 받은 사탄의 종교입니다.
레위기 23장에 기록된 여호와의 절기는 과연 유대인만을 위한 절기일까요? 구약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신약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하나님으로 더욱 분명히 드러나셨으며,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다른 분이 아니시며 영원토록 동일하신 이스라엘의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레위기 23장의 여호와의 절기는 유대인만의 절기가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이루어진 교회의 절기도 됩니다. 실제로 여호와의 절기 가운데 봄에 해당하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은 예수님의 초림 당시 이미 완전하고 정확하게,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참조: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52544
이스라엘 4대 봄 절기 순서, 예수님 구속사의 예표
6. 봄 절기(초림 예수의 예표) 유월절 어린양 피 좌우 문설주·안방에 출애굽 당시 마지막 재앙 막아 어린양 되신 예수 희생 상징해 1) 유월절 (1) 기원(출 12:31-13:14, 레 23:4-5) 성력(聖歷)의 시작이자
www.christiantoday.co.kr
그러나 사탄은 로마 카톨릭의 전통과 반유대주의 및 대체신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교회의 눈을 가리고, 레위기 23장에 기록된 여호와의 절기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교회는 레위기 23장에 기록된 가을 절기인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이 예수님의 재림 때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맑은 정신으로 다시 한번 성경을 살펴보고 이 절기들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이 미리 아신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로마서 11장 1-2절)
참된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라면 레위기 23장에 기록된 여호와의 일곱 절기에 대해 깊이 숙고해야 합니다. 봄의 절기인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이 예수님의 초림 때 문자 그대로 성취된 것처럼, 가을의 세 절기인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 역시 예수님의 재림 때 성취되는 것이 성경적으로 타당하며 합리적입니다. 레위기 23장의 일곱 절기는 단지 유대인의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정하신 '여호와의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절기들, 특히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과 같은 가을의 절기들이 예수님의 재림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 순수한 성경적 신앙입니다. 반면, 이러한 절기들에 대해 무시하거나 무관심한 것은 로마 카톨릭의 전통을 성경의 진리보다 우선시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4. 교회의 휴거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여호와의 절기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에서는 나팔절이 다음과 같은 12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1.회개의 날: Teshuvah (repentance)
2.새로운 해의 날: Rosh HaShanah (Head of the Year, Birthday of the World)
3.나팔의 날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큰 나팔소리): Yom Teruah (Feast of Trumpets, The Awakening Blast)
4.심판의 날: Yom HaDin (the Day of Judgment)
5.왕의 대관식의 날: HaMelech (Coronation Day of the Messiah)
6.기념 (기억)의 날: Yom HaZikkaron (Day of Remembrance or Memorial)
7.야곱의 환난의 날: Chevlai shel Mashiach (Time of Jacob’s Trouble, Birthpangs of the Messiah)
8.결혼식의 날: Kiddushin/Nesu’in (the Wedding Ceremony)
9.부활의 날: Natzal (the Resurrection)
10.마지막 나팔의 날: Shofar HaGadol (the Last Trump)
11.숨겨진 날: Yom Hakeseh (the Hidden Day)
12.하늘 문이 열리는 날: The opening of the Gates
(1) 나팔절: 숨겨진 (감춰진) 날 (Yom Hakeseh, The Hidden Day)
성경은 거듭난 교회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이 밤의 도둑처럼 갑자기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칩니다. 여기서 말하는 '밤의 도둑처럼 갑자기 닥치는 재림'은 예수님의 지상 재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상 재림은 성경에서 이미 구체적인 징조와 일정이 예고되어 있어, 환난기의 7년이라는 기간을 누구나 분명하게 계산할 수 있고, 마지막에는 아마겟돈 전쟁이 벌어지는 등 예측 가능한 사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도둑 같이 임하는” 이라고 묘사되는 사건은 무조건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교회의 휴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중 재림은 참된 교회가 아무것도 모른 채 어둠 가운데 있다가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되는 사건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는 빛 가운데 깨어 있어서 그날을 알 수 있음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데살로니가전서 5 장 2-6절)
성경은 휴거의 사건이 일어날 때 나팔 소리가 울릴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다음은 나팔 소리와 관련된 휴거를 말씀하는 성경 구절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요한계시록 4장 1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재림의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르며,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태복음 24장 36절)
그런데 흥미롭게도 예수님께서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나팔절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팔절은 그믐달이 끝나면서 달의 왼쪽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빛의 테두리가 점차 사라지고 완전히 어두워지는 월삭, 곧 신월 (new moon)이 시작되는 시점과 연결됩니다. 이 신월이 시작되면서 나팔절은 이틀 동안 이어지는데, 이 기간 동안에는 달이 보이지 않는 상태가 지속됩니다. 이후 이틀의 나팔절 기간이 끝나갈 즈음에 달의 오른쪽에서 다시 빛의 희미한 테두리가 나타나기 시작할 때 나팔을 불게 되는 것입니다. 즉, 나팔절은 정확한 시작의 날과 때를 미리 알 수 없는 ‘숨겨진 날’로 간주됩니다.
구약 시대의 유대인들은 오늘날과 같은 천문학적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달이 보이지 않는 월삭의 기간이 끝나고 달의 오른쪽에 빛의 희미한 테두리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는 정확한 때를 미리 알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나팔절은 전통적으로 ‘아무도 그 날과 그 시각을 알 수 없는 날(no one knows the day or the hour)’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재림의 때에 관해 말씀하셨던 구절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오직 내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태복음 24장 36절)
(2) 나팔절: 결혼식 (Kiddushin/Nesu’in, The Wedding Ceremony), 왕의 대관식의 날 (Yom HaMelech, the Day of the Coronation of the King)
유대인의 혼인 잔치는 예수님의 재림과 교회의 휴거를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예언적 행사입니다.
유대 갈릴리의 혼인잔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예비 신랑과 신부는 포도주를 통해 혼인의 언약을 맺습니다. 이때 예비 신부는 혼인 언약의 포도주를 자발적으로 거부할 수도 있으며, 스스로의 의지로 포도주를 마시면 혼인의 언약이 정식으로 체결됩니다. 그 후, 예비 신랑은 언젠가 반드시 예비 신부를 데리러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후 잠시 헤어집니다. 이때 예비 신랑이 예비 신부를 데리러 오는 정확한 시점은 오직 신랑의 아버지만 알고 있습니다.
이 헤어져 있는 기간 동안 예비 신부는 다른 남자와의 교제를 멀리하고 자신을 정결하게 지키며, 언제 올지 모르는 혼인의 날을 기다리며 준비합니다. 한편, 예비 신랑은 그 기간 동안 아버지의 집에서 예비 신부와 함께 지낼 신혼방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신랑의 아버지만 아는 특별히 정한 날, 즉 혼인의 날 새벽이 되면, 신랑의 아버지는 예비 신랑에게 신부를 데려오라고 허락하고, 예비 신랑은 아버지와 더불어 지인들과 함께 나팔을 불며 예비 신부를 데리러 가게 됩니다. 그때 예비 신랑은 신부를 미리 준비한 가마에 태워서 아버지 집에 마련해 놓은 신혼방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먼저 신랑과 신부가 신혼방에서 7일간의 은밀한 기간 (혼인 consummation, 혼인의 완성 기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이 7일이 지난 후, 신랑은 하객들 앞에 처음으로 신부를 공식적으로 공개하고 그때부터 성대한 혼인 잔치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땅에서는 7년의 환난 기간이 있는 동안, 하늘에서는 예수님과 교회가 7년 동안 혼인의 완성 기간을 보내고, 그 7년이 끝난 후 교회가 예수님의 신부에서 아내로 준비되어 예수님과 함께 혼인 잔치를 위해 땅으로 내려오는 것과 동일합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릴지니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이르렀고 그분의 아내가 자신을 예비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9장 7절)
참조: https://blog.naver.com/gksmh80/223913490291
요한계시록 해석-19장 (아마겟돈 전쟁과 예수님의 재림) 파트 2
요한계시록 19장 *요한계시록 19장의 해석은 Derek Walker 목사님의 요한계시록 저서를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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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유대인의 혼인잔치 배경을 이해하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유월절 만찬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빵과 포도주로 새 언약을 맺으시며 하셨던 요한복음 14장의 말씀을 보면, 그 의미가 더욱 아름답고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요한복음 14장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위의 구절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유대 갈릴리 혼인잔치의 풍습을 염두에 두시고, 신랑이 신부를 잠시 떠나 아버지 집에서 혼인할 처소를 마련한 후 다시 돌아와 신부를 데려가는 장면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신랑은 예수님을 의미하며, 신부는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과 앞으로 세워질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를 가리킵니다. 당시 갈릴리 혼인잔치의 풍습에 익숙했던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자마자 예수님께서 혼인잔치를 비유로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즉시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갈릴리 가나의 혼인 풍습과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 역시 예수님과 언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써,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의 죄의 빚을 모두 갚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역사 속에서 살아가다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여러 경로를 통해 복음을 제시받게 됩니다. 이는 갈릴리의 혼인잔치 풍습에서 혼인 언약의 포도주를 제시받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복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여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혼인 언약의 포도주를 기쁘게 받고 마시는 행위와 같으며, 곧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혼인 언약이 체결된 이후, 예비 신부는 신랑과 잠시 떨어져 지내면서 신랑이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자신을 정결하고 순결하게 단장합니다. 이는 거듭나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죄에서 돌이켜 성화의 과정을 밟아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동시에 이는 신랑이신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를 나타냅니다.
한편, 예비 신랑은 아버지 집에서 신부와 함께 거할 집을 마련합니다. 이는 요한복음 14장 1-3절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께서 천국에 자신의 신부인 교회가 거할 처소를 마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랑의 아버지만이 아시는 정해진 때가 되면, 신랑은 나팔을 불면서 예비 신부를 데리러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재림과 교회의 휴거가 유대 혼인잔치와 같음을 암시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유대 혼인잔치에서 신랑이 언제 신부를 데리러 올지 그 정확한 때는 오직 신랑의 아버지만 알았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재림의 때는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24장 36절)
그렇다면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 여호와의 일곱 절기 중 아직 성취되지 않은 가을의 세 절기 (9~10월경)인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은 예수님의 재림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나팔절은 이 세 절기 중 예수님의 재림과 가장 먼저 연결되는 절기로, 많은 사람들이 나팔절이 교회의 휴거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믿고 있습니다. 저 또한 나팔절과 교회의 휴거가 밀접하게 연관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와 관련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아래 블로그 글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gksmh80/222819133061
나팔절과 휴거와의 연관성 part 1
창세기에 하나님은 창조 넷째 날 해와 달로 약속된 시간을 의미하는 절기를 정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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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blog.naver.com/gksmh80/223579831485
나팔절과 휴거와의 연관성 part 2
성경은 우리에게 휴거의 사건이 일어날 때 나팔 소리가 날 것을 말씀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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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교회의 휴거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연도
다니엘의 70이레 가운데 원래 마지막 한 이레에 해당하는 침례 요한과 예수님의 사역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취소되고 보류되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그 보류되었던 마지막 한 이레를 7년 환난기로 정하셨습니다. 따라서 원래의 마지막 한 이레와 7년 환난기의 마지막 한 이레는 서로 대칭되며, 반복되는 공통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글과 그림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래의 글은 다니엘의 70이레에 관한 내용이며, 읽어보시면 많은 도움이 되고 유익을 얻으시리라 믿습니다.
참조: https://blog.naver.com/gksmh80/223894399240
다니엘 70이레의 해석
요한계시록 8장 들어가기 전에 알아야 할 중요한 다니엘 70이레에 대해 다니엘서 9장 24–27절에 기록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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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인용된 다니엘 70이레 예언에 대한 블로그 글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듯이, 침례 요한의 사역 시작 연도는 AD 26년이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연도는 AD 33년으로, 이 기간은 정확히 7년에 해당합니다. 이것이 원래 계획된 다니엘 70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거부했기 때문에, 이 마지막 한 이레의 성취는 일시적으로 연기되었으며, 앞으로 다가올 7년 환난기가 그 마지막 한 이레의 재시행 기간에 해당합니다.
성경은 하루를 천년으로 환산할 수 있다는 힌트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에 안식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6일의 창조 후 제7일을 거룩히 구별하여 안식일로 정하신 것을 단지 아무런 의미 없는 상징으로 여긴다면, 이는 성경 전체에 나타난 구조적 일관성과 예언적 질서를 간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말씀하시고 그것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임을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옛적의 이전 일들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요,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나니 나는 [하나님]이니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처음부터 결말을 밝히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들을 옛적부터 밝히 알리고 이르기를, 나의 계획이 설 터이니 내가 나의 기뻐하는 일을 모두 이루리라, 하였노라.” (이사야 46장 9-10절)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지 아니하노니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아노라. 그러나, 나와 함께 빵을 먹는 자가 자기 발꿈치를 들어 나를 대적하였나이다, 한 성경 기록이 성취되게 하려 하노라. 그것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지금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그것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13장 18-19절)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며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는 천지창조의 6일을 그냥 별 의미 없이 임의로 정하셨을까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단 1초, 아니 0.1초 만에도 세상을 창조하실 수 있었고, 반대로 1년이든 10년이든 긴 시간에 걸쳐 창조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제7일에는 쉬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안에 담긴 시간의 질서와 예언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하루를 천년으로 환산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주의 눈앞에서는 천 년이 단지 지나간 어제와 같으며 밤의 한 경점과 같나이다.” (시편 90편 4절)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 사실에 대하여 무지한 자가 되지 말라.” (베드로후서 3장 8절)
히브리어의 첫 번째 알파벳, 즉 영어의 A에 해당하는 글자는 א (알레프)입니다. 히브리어에서는 모든 글자에 숫자값이 부여되어 있는데, א (알레프)는 첫 번째 글자이자 숫자값 1을 가집니다. 이 א (알레프)를 발음 나는 대로 풀어쓰면 אלף (알레프)가 되며, 이 단어는 "1000"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히브리어에서 א(알레프)는 실제적으로 숫자 1과 1000을 모두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א(알레프)는 1과 1000을 동시에 상징할 수 있으며, 이는 히브리어 안에서 1과 1000이 개념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아래 그림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히브리어의 첫 번째 알파벳인 알레프는 실제로 숫자 1과 1000 모두를 나타낼 수 있는 글자입니다.
유대인들은 반복되는 사건과 절기 속에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담겨 있다고 믿습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나 우연이 아니라, 장차 성취될 하나님의 계획을 예표하는 예언적 모형으로 이해합니다. 이러한 이해는 히브리적 사고에서 매우 중요한 해석 원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과정을 살펴보면 4–2–1의 구조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4일 동안 지구에 생명이 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시고, 이어서 2일 동안 그 환경에 거할 생명체들을 창조하셨습니다. 마지막 제7일째 날에는 안식하셨습니다. 즉, 4일 + 2일 + 1일 = 7일, 하나님의 창조 주간 전체가 하나의 구속적 청사진으로 제시된 것입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창조의 4–2–1 구조는 인류 역사 속에서도 예언적으로 반복됩니다. 4천 년 동안 하나님은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통한 인류의 구속을 위한 환경과 준비 과정을 진행하셨고, 4000년 만에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부활 후 2천 년 동안, 즉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은혜의 시대, 곧 교회 시대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 교회 시대는 2000년이 차면 끝이 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1천 년,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예루살렘에서 성도들과 함께 직접 이 땅을 다스리는 천년왕국이 펼쳐질 것이라는 믿음은 성경적 패턴에 기초한 해석입니다. 이 천년왕국은 인류 역사의 ‘안식일’에 해당하며, 영적 안식과 회복의 시기입니다. 이와 같은 패턴은 예수님의 공생애와 십자가 사건 속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닛산월 10일, 월요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는 유월절 어린양을 닛산 10일에 선택하여 준비하라는 출애굽기의 규례를 성취하신 장면입니다.
“그 다음 날 명절 (닛산 10일 낮) 에 온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말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서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이여, 하더라.” (요한복음 12장 12-13절)
예수님은 예루살렘 입성 후 4일 동안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로부터 철저히 검증받으셨고, 흠이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인정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입성 4일 후인 금요일, 유월절 희생 제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2일 동안 무덤에 계셨으며, 셋째 날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역시 창조 질서와 동일한 4–2–1의 패턴을 따르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1장에 기록된 나사로 사건에서도 동일한 구조가 반복됩니다. 나사로는 병으로 죽은 뒤 4일이 지난 후에야 예수님께서 그를 살리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의도적이고 완벽한 시간 계획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나사로는 죄로 인해 죽은 인류를 상징합니다. 4천 년이 지나도록 죄로 죽어 있었던 인류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니” (요한복음 11장 25-26절)
그러므로 4000년 만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2000년의 은혜의 교회 시대가 이어지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1000년 동안 이 땅에 안식의 시기가 올 것이라는 믿음은 단순한 세대주의 해석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합리적이고 의미 있는 추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에서 체계화된 반유대주의적이고 대체신학적인 종말론에 세뇌되지 않고, 맑은 정신과 성경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말씀이 충분히 성경적이고 타당하다는 것을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조: https://blog.naver.com/gksmh80/223850721836
무천년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6000년 인류 역사와 천년왕국)
무천년주의는 한마디로,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년왕국"을 문자적인 기간이 아닌 상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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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희년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희년서 4장
29. 19번째 희년이 끝날 무렵, 일곱째 주간의 여섯째 해에 (아담 이후 930년)에 아담이 죽으니 그의 모든 아들들이 그를 그가 지음 받았던 그 땅에 묻었다. 그는 그 땅에 묻힌 첫 번째 사람이었다. 30. 그의 생애는 천년에서 칠십 년이 부족했다. 이는 하늘들의 증거에서는 천 년이 하루와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식의 나무에 관하여 기록되어 있다. “너가 그것을 먹는 그 날에 너는 죽으리라” 그러므로 그는 이 하루의 해들을 다 채우지 못했다. 이는 그가 그 하루를 사는 동안 죽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2장 17절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는 날에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장 17절, 킹제임스)
위의 창세기 2장 17절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날” 이라는 단어가 “בְּי֛וֹם (베욤)”이라고 쓰였습니다. 히브리어에서 “י֛וֹם (욤)”의 의미는 하루이며 욤 앞에 “~ 안에” 를 의미하는 “בְ (베)” 가 붙으며 “하루 안에“ 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선악과를 먹으면 먹은 그 날로부터 하루 안에 (베욤) 죽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희년서에 따르면 하루는 천 년과 같으며,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후 하늘의 기준으로는 하루 만에, 즉 이 땅의 시간으로는 천 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죽었으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온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루를 안식하셨다는 것은, 이 지구의 역사가 6,000년 동안 이어지고 그와는 구분되는 1,000년의 안식 기간이 있을 것을 미리 예언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조: https://blog.naver.com/gksmh80/223866187856
희년서와 에녹서를 통해 드러나는 성경의 더 깊은 진리 Part 1
1. 시작의 글 이 글은 육에녹님의 희년서와 에녹서를 읽다가 중요한 부분들을 개인적으로 정리하고, 주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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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하루를 천년으로 계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힌트로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래 호세아서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세아서 6장 1-3절)
위의 호세아 6장 1-3절에 기록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2000년이 차는 시점, 즉 3000년이 시작되는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어 이스라엘을 회복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교회 시대를 약 2000년의 기간으로 설정하시고, 그 2000년이 지난 후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첫째 날과 둘째 날 (이틀):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거부하고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 약 2000년간의 교회 시대를 의미합니다. 이 기간이 끝날 무렵, 이스라엘은 민족적으로 회개하게 되고, 예수님의 지상 재림과 함께 이스라엘은 회복될 것입니다.
셋째 날: 이어지는 1000년 기간 동안, 회복된 이스라엘은 주님 앞에서 그분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마지막 1000년은 바로 요한계시록 20장에 묘사된 천년왕국, 즉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 시대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침례 요한이 사역을 시작한 해가 AD 26년이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해가 AD 33년이라는 사실에 근거할 때, 성경에서 암시된 대로 정확히 2000년 뒤에 다니엘의 70이레 중 마지막 한 이레, 곧 7년 환난기가 재개된다면, 그 시기는 AD 2026년부터 AD 2033년 사이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AD 33년에 돌아가셨는지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제 블로그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gksmh80/223164805542
예수님의 부활-셋째 날 (the third day) 인가 아니면 3일 낮과 3일 밤 (3 days and 3 nights) 인가?
이 내용은 Oxford Bible Church 의 Derek Walker 목사님 유튜브 영상을 참고로 하여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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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교회의 휴거가 이루어진 직후 곧바로 7년 환난기가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환난기가 개시되기 전에 일정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준비기는 적어도 약 몇 개월에서 몇 년 정도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올해 2025년의 나팔절에 교회의 휴거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7년 환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준비기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은 아래의 블로그 글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으므로 참고하시면 더욱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참조: https://blog.naver.com/gksmh80/223891109378
요한계시록 해석-6장 (일곱 인 심판)
요한계시록 6장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 재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일곱 인, 일곱 나팔,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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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잠들어 있는 성도들이여, 깨어나십시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결코 휴거의 날짜를 확정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성경적 근거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고려한 가능성일 뿐입니다. 이 계산에는 얼마든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정확히 2000년이라는 기간에도 몇 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해가 아니라 다른 해가 될 수도 있고, 나팔절이 아닌 다른 때에 휴거가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교회의 휴거가 매우 가까이 다가왔다는 점만큼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참된 신앙을 가진 성도라면, 특별히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성도라면, 나팔절 기간은 특별히 마음이 설레는 시기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며,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성도들은 성경에 명시된 절기들을 통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기대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정확히 언제 오실지 우리가 확정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매년 나팔절을 맞이할 때마다 "이번 나팔절에 혹시 주님께서 오시지 않을까"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기도하는 것은 깨어 있는 것이며 믿음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올해 오시지 않더라도 내년을 또 기다립니다.
우리 세대는 휴거를 목격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휴거는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으며, 성경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예수님의 재림과 휴거가 일어날지 정확히는 몰라도, 늘 깨어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면 반드시 그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결코 날짜를 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평신도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평신도의 입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나팔절이 아니라 다른 때에 오시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을 깨어서 살피고 연구하도록 마음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비난받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며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소망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말로만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주님의 다시 오심이 없을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경건하며 성경적인 믿음의 자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https://blog.naver.com/gksmh80/223868188053
예수님의 재림이 없을 것처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
이스라엘은 마지막 때 하나님의 시간표이며 1948년에 이스라엘이 독립한 시점부터 세상의 종말 시계는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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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재림의 임박성을 마음에 품고 사는 성도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날짜를 정하고 모든 것을 내팽개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곧 오실 수 있다"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루하루를 더 최선을 다해 살고, 죄를 멀리하며 더욱 경건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깨어 있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시대의 징조를 정확히 분별하고 깨어나야 합니다. 지금은 세상이 빠른 속도로 침몰하고 있음을 깨닫고, 깨어서 정신 차리고, 주님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며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한 성도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그러므로 너희가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피하고 사람의 [아들] 앞에 서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지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장 3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