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리의 정의
모든 학문은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들어간다는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와 우리 나라 서울대학교의 로고에 공통적으로 라틴어로 'VERITAS (진리)' 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대학교들의 로고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봐도 거의 대부분 진리와 관련된 상징이나 문구가 들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전세계의 모든 똑똑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성을 총동원하여 찾고자 하는 “진리” 란 과연 무엇일까요? 먼저 진리의 사전적 정의를 알아보겠습니다.
“진리(眞理, 영어: truth)이란, 1. 현실이나 사실에 분명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 또는 2. 보편적·불변적으로 알맞은 것을 뜻한다.”
사전적으로 진리의 정의는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지는 것 같습니다. 먼저 인간의 이성의 빛으로 알게 된 참된 것은 과학을 통해 알게 된 불변하는 자연 법칙 같은 것이 있겠습니다. 이는 진리의 첫번째 정의인 현실이나 사실에 분명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과학은 분명 첫번째 진리의 영역을 어느 정도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진리의 두번째 정의인 보편적 그리고 불변적으로 알맞은 것은 인간 이성의 빛을 초월한 궁극적인 진리로 볼 수 있겠습니다. ChatGPT 에게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고민해 온 근본적인 문제들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물어보았고 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고통과 악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가?
진리는 무엇인가?
하지만 지금까지 모든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이 이 물질 세계 내에서 진리의 두번째 정의와 관련된 인생의 궁극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수없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실패하였습니다. 궁극적인 진리는 이 물질 세계 내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으며 물질 세계 밖으로부터 우리에게 계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물질 세계내에서 억지로 모든 만물의 기원을 찾으려다 보니 나온 이론이 진화론입니다. 사람과 제일 비슷한 동물을 찾다 보니 원숭이였습니다. 진화론은 모든 만물이 하나의 바위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매우 어리석은 믿음에 불과합니다. 창조론도 믿음이고 진화론도 믿음인데 진화론은 모든 것이 바위에서 우연히 시작되었다는 믿음이고 창조론은 모든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믿음입니다. 둘 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믿음의 영역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죄가 주는 은밀한 즐거움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고 심판이 있다는 것을 견딜 수 없고 못마땅히 여겨서 진화론을 믿고 싶은 것 뿐입니다.
진화론은 우리가 ‘바위’에서 나왔다고 가르친다 | 복음기도신문
공룡은 창조 때부터 존재했던 파충류하나님이 완벽하게 만든 세상을 인간이 망가뜨렸다진화론에 근거한 약물요법 vs 창조론에 기초한 영양요법
gpnews.org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편 53편 1절)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장 19-21절)
어찌되었든 궁극적인 진리는 이 물질 세계가 아닌 물질 세계 너머 외부에서 와야 합니다. 컴퓨터가 자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려면 컴퓨터 내부에서 아무리 찾아봤자 알 수가 없고 컴퓨터 밖으로 나가야 알 수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은 진리는 물질적 세계가 아니라 이데아(이상적인 형태)의 세계에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그는 현실 세계의 사물들은 이데아의 불완전한 그림자에 불과하며, 인간이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이데아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데아 세계의 진리야말로 변하지 않는 궁극적인 진리라고 보았습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D%94%8C%EB%9D%BC%ED%86%A4
플라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플라톤(고대 그리스어: Πλάτων, 플라톤, "넓은, 어깨 폭이 넓은";[1], 영어: Plato 플레이토[*]; 기원전 428년/기원전 427년 또는 기원전 424년/기원전 424년 [a] ~ 기원
ko.wikipedia.org
플라톤이 얘기했듯이 모든 만물이 거하는 물질적 세계 내에서는 위의 인생의 최대 난제들에 대한 답을 절대 알 수 없고 물리적 세계의 외부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어야 우리는 참된 궁극적인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히브리서 11장 3절)
2. 궁극적인 진리
위에 제시한 인생의 모든 난제들에 해답을 줄 수 있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진리의 두번째 정의인 보편적 그리고 불변적으로 알맞은 것일 것이고 궁극적인 진리가 될 것입니다. 위의 질문들을 요약하면 결국은 모든 존재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것이 궁극적인 진리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질 세계 외부로부터 기원하여 모든 만물을 있게 하였고 또한 모든 만물의 결론을 내는 시작과 결말이 물질 세계의 모든 만물의 이치와 삶과 고통과 죽음 그리고 도덕적인 선과 악의 답을 알고 해결책을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 자동차의 이치를 알기 때문에 자동차가 고장났을 때 고칠 수 있고 핸드폰을 만든 사람이 핸드폰의 이치를 알기 때문에 핸드폰을 고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모든 만물이 출발한 시작점이자 모든 만물의 종착지가 진리입니다. 모든 것은 진리에서 나와 진리로 돌아가며, 진리는 수수께끼 같은 인생의 모든 문제와 고통을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해답입니다. 죽음에 대한 필연성과 우연성을 포함한 현실적 한계를 뛰어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게 됩니다. 진리는 죽음으로 인한 불안하고 두렵고 슬픈 인생의 모든 해답을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입니다.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잠언 23장 23절)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 사람이 그것의 값을 알지 못하며 산 자들의 땅에서 그것을 찾을 수 없도다. 깊음이 이르되, 그것이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다도 이르되, 그것이 내게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 그것은 금으로도 얻지 못하며 은을 달아서도 그것의 값을 치르지 못하리로다. 오빌의 금이나 귀한 줄마노나 사파이어로도 그것의 값을 매기지 못하겠고 황금과 수정이라도 그것과 견주지 못하며 정금 보물로도 그것을 바꾸지 못하고 산호나 진주는 말할 필요도 없나니 지혜는 루비보다 더 값지도다. 이디오피아의 황옥이라도 그것과 견주지 못하며 순금으로도 그것의 값을 매기지 못하리로다. 이러하거늘 지혜는 어디서 오는가?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 그것이 모든 생물의 눈에 숨겨졌고 공중의 날짐승들에게 가려졌나니 멸망과 죽음도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의 귀로 그것의 명성을 들었노라, 하느니라.” (욥기 28장 12-22절)
성경은 우리에게 “진리가 무엇이냐?” 고 질문합니다.
“빌라도가 그분께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요한복음 18장 38절a).
성경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의 종이며 죄의 심판을 받아 인생이 사망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사망은 몸의 사망만 의미하는 것이면 다행이겠는데 이는 몸의 사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몸의 사망 이후에 영혼이 불호수에 던져지는 영원한 두번째 사망까지 의미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 (히브리서 9장 27절)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요한계시록 20장 12-15절)
하지만 성경에서 진리는 우리를 죄의 종에서 자유케 하여 몸과 영혼의 영원한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너희의 열매를 얻었으니 그 끝은 영존하는 생명이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6장 22-23절)
요한복음 8장
31.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연세대학교의 모토도 위의 성경 구절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진리는 인생의 최대 난제인 몸의 사망과 그 뒤에 있을 진정으로 두려운 영혼의 영원한 사망까지 해결하고 자유롭게 해줍니다. 그렇다면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믿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3. 진리란 누구인가?
그렇다면 진리는 무엇입니까 혹은 누구입니까? 위의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가 죄인을 자유케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36절에는 아들이 또한 죄의 종을 자유롭게 한다고 쓰여 있으므로 진리는 아들과 동일시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너무나 명확하게 진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
인류 역사에서 그 누구도 자신있게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던 분은 없습니다.
4. 성경 말씀만이 진리인 이유
그렇다면 수많은 종교 경전들과 책들 중에서 성경 말씀만이 사실이며 진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성경에 미리 기록되었던 예언들이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고 또한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진리입니다. 이렇게 책에 미리 기록되었던 말씀들이 실제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던 책은 성경이 유일무이합니다.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은 이사야서에 자신이 미리 말씀하신 말씀들을 이룰 것이며 이것을 보고 자신이 참된 하나님인 것을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1장, 새번역
21.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민족의 신들아, 소송을 제기하여 보아라."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여 보아라." 야곱의 왕께서 말씀하신다.
22.이리 와서,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우리에게 말하여 보아라. 지난날에 있었던 일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말하여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그것들을 살펴 그 결과를 알아보겠다. 아니면, 앞으로 올 일들을 우리에게 말하여 보아라.
23.장차 올 일들을 말하여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너희들이 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복을 내리든 화를 내리든, 좀 하여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모두 놀라며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24.참으로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가 하는 일도 헛것이니, 너희를 섬겨 예배하는 자도 혐오스러울 뿐이다.
다니엘서는 바빌론 포로기간 동안에 기록되었는데 바빌론의 멸망 후 세계의 패권이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제국으로 이어질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역사가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다니엘서 11장에는 페르시아 제국에 이어 알렉산더 대왕이 일어나고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 이후 그리스 제국이 4개의 제국으로 나뉠 것이 예언되어 있고 실제 역사에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의 4개의 제국들 중에 가장 강력했던 프톨레미 왕조와 셀류커스 왕조의 영토 쟁탈전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마치 과거의 일을 기록하는 역사책처럼 실제 역사 가운데 일어났던 일들이 정확하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구약의 수많은 말씀들과 예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었고 실제로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유대인으로 오셔서 구약의 모든 예언들을 문자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이렇게 정확하게 예언이 모두 이루어진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경건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예수님의 존재와 부활이 거짓이라고 증명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아래는 어떤 기자가 예수님의 역사성을 부인하려고 시도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역사의 증거들 앞에서 완전하게 실패하고 오히려 열렬하게 예수님을 믿는 신자로 거듭난 내용의 유명한 책과 영화입니다.

또한 불경건한 학자들이 구약의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도록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들도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은 지금까지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목숨처럼 보존해 왔는데 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원수인 예수님을 가리키도록 구약을 조작했을까요?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약 300년 전에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 같은 성경은 현재의 구약 성경과 내용이 동일한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훨씬 전에 예수님께서 그런 일들을 이룰지 미리 알고 구약 성경을 미리 조작했을까요?
나라가 망하고 없어진지 1900년 만인 1948년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기적적으로 다시 생겼고 현재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2024년에 이 조그마한 나라인 이스라엘의 전쟁에 전세계가 휘말리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마지막 때의 성경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중입니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사방 모든 백성에게 사람을 떨게 만드는 잔이 되게 할 터인데 그때는 곧 그들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치려고 에워쌀 때니라. 그 날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모든 백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비록 땅의 모든 백성이 그것을 치려고 함께 모일지라도 그 돌로 짐을 진 자는 다 산산조각 끊어지리라.” (스가랴 12장 2-3절)
참고:
시편 83편과 이스라엘 전쟁 그리고 성경 예언이 성취되는 시대
현재 이스라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시편에 미리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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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도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666 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손바닥 결제 시스템이나 칩이식 같은 기사들에 666의 시대가 온다는 등의 댓글들이 달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인터넷 주소창에 치는 www 와 바코드 그리고 QR 코드 및 베리칩 등이 모두 짐승의 숫자인 666 의 숫자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앞으로 성경의 예언대로 666의 표를 받게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런 시대가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짐승의 숫자인 666은 오직 유일하게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곧 일어날 교회의 휴거를 통해 사람들은 성경 말씀이 사실일 수 있겠다는 두려움을 가질 것입니다. 특히 여호와의 절기인 나팔절 그날에 맞춰 휴거가 일어난다면 더욱 더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나팔절과 휴거와의 연관성 part 2
성경은 우리에게 휴거의 사건이 일어날 때 나팔 소리가 날 것을 말씀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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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주님)의 절기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의 시간표 (나팔절과 휴거와의 연관성)-2024년 2월 27
레위기 23장에는 여호와의 일곱 절기인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대속죄일, 그리고 초막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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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휴거가 일어난다면 세상에는 불신자들과 배교한 교회들만 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심판을 참으실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으실 것이며 성경 말씀을 믿지 않고 불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여움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와 그들이 눈먼 자들처럼 걷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주}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 또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거름같이 되리로다. {주}의 진노의 날에는 그들의 은이나 그들의 금이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그 온 땅이 그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니 그가 그 땅에 거하는 모든 자를 신속히 제거하리라.” (스바냐 1장 17-18절)
하지만 그 이면에는 환난의 기간동안 유대인을 비롯하여 회개할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 3장 2절)
그리고 7년의 환난기를 거치며 셀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 영원히 감사를 드릴 것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요한계시록 7장 9-10절)
참고:
요한계시록 7년 환난의 타임라인: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심판의 시간 순서
서론: 요한계시록은 예수님 재림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성령님께서 점진적으로 그 의미를 열어주시는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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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해석의 원칙과 전체 내용의 요약
• 이 내용은 Oxford Bible Church 의 Derek Walker 목사님의 책 A Chronological Commentary on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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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성경의 말씀이 진리이며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들은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5. 진리는 예수님
모든 만물이 출발한 시작점이자 모든 만물의 종착지가 진리인데 성경은 예수님께서 시작과 끝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구약에서는 “처음이요 마지막” 이라는 호칭을 가지시는 분은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합니다. 다시 얘기하면 아래 이사야서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처음이요 마지막” 이라는 호칭은 오직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께만 해당되는 호칭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이사야 44장 6절)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을 폈나니 내가 그들을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라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나 여호와가 사랑하는 자는…” (이사야 48장 12-14절)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이사야서에 분명하게 여호와 하나님께만 쓰이던 “처음이요 마지막” 이라는 타이틀을 분명히 예수님께 적용하면서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확증합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의 타이틀인 “처음이요 마지막” 인 분이라고 소개하시며 동시에 자신이 죽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요한계시록 1장 17-18절)
“서머나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처음이요 마지막인 이 곧 전에 죽었다가 지금 살아 있는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요한계시록 2장 8절)
이것은 지금 위의 요한계시록 구절에서 말씀하시는 화자가 성부 하나님이나 성령 하나님이 아닌 성자 예수님인 것을 오해하지 말고 분명하게 알라고 독자들에게 확인시켜주는 것입니다. 아들 예수님은 참 인간이시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수 있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나 성령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들은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시며 참 인간이시며 동시에 참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분명히 구별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등하고 동일한 하나님이신 것을 성령 하나님께서 계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인간이시기 때문에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하시며 우리 인간에게 있어 모든 문제의 해답인 진리가 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에 대해서는 제 이전 블로그 글들을 참조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m.blog.naver.com/gksmh80/223348580549
주님의 의미 (신약성경에서 사라진 구약성경의 여호와의 이름을 찾아서)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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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라는 단어를 히브리어로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소개하십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다 이루어졌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값없이 주리라.” (요한계시록 21장 6절)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요한계시록 22장 13절)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자신을 헬라어의 첫 알파벳인 알파와 마지막 알파벳인 오메가라고 소개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약이 기록된 언어이자 이스라엘의 언어인 히브리어의 첫 알파벳인 알레프와 마지막 알파벳인 타브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즉 예수님은 “나는 [알레프]와 [타브]요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요한계시록 22장 13절) 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의미하는 알레프 타브는 구약 성경 전체에 걸쳐 9500번 이상 굉장히 많이 쓰입니다. 알레프 타브는 보통 특정 목적어 앞에 쓰이지만 어떤 규칙이 없이 쓰입니다. 그런데 알레프 타브는 뜻이 없으므로 번역이 안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 원문 성경을 보지 않으면 성경의 어떤 문장에 알레프 타브 라는 단어가 쓰이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어 번역 성경이나 한글 번역 성경에는 알레프 타브 단어의 뜻이 없기 때문에 번역이 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본 성경에만 보이는 이 알레프 타브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상징이자 마크입니다. 알레프 타브는 겸손하게 숨어 있지만 구약 성경 전체에 찍혀 있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인장입니다.

또한 성경의 가장 처음인 창세기 1장 1절에도 알레프 타브가 숨겨져 있습니다. 즉 성경의 처음인 창세기 1장 1절과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 22장에 모두 알레프 타브가 들어있습니다. 아래 보시는 것처럼 알레프 타브 (את)는 창세기 1장 1절에 하나님 우편에 등장합니다. 알레프 타브 (את)는 처음과 마지막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처음부터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계셨으며 또한 이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장 1절)


그리고 히브리어의 중간 글자인 멤 (מ) 은 물 (마임, מים) 을 뜻하며 성경에서 물은 생명 즉 말씀을 뜻합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려 하심이요” (에베소서 5장 26절)
또한 물과 피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오지 아니하시고 물과 피로 오셨느니라. 증언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이는 /성령]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이라.” (요한일서 5장 6절)
“예수님께 이르러서는 그분께서 이미 죽은 것을 보고 그분의 다리를 꺾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군사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니 즉시로 거기서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한복음 19장 33-34절)
그리고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한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요한복음 1장 1절)
그렇다면 앞서 봤던 “진리” 라는 단어를 히브리어로 다시 보겠습니다.

또한 히브리어로 א (알레프)는 리더를 가리키자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ת (타브)는 언약을 의미하며 이는 고대 히브리어로 나무 두개를 겹쳐 놓은 것을 의미하며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알파와 오메가 즉 알레프 타브 (את)라는 것은 십자가 위의 하나님 즉 삼위일체 제 2위격의 성자 하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암시합니다. 더 자세한 것은 제 이전 블로그 글을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예수님의 정체)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일어나야 할 것들을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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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히브리어로 진리를 의미하는 에메트는 처음과 끝이시며 물과 피와 말씀이신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즉 히브리어로 진리는 예수님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만물의 시작을 가져오신 창조주이시며 모든 만물의 마지막을 결정하실 구원자이자 심판자이시기 때문에 진리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인간 세상의 외부에서부터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며 인생의 최대 난제인 과연 인간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답이시고 죽음을 해결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히브리서 11장 3절)
“그분께서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창조물의 처음 난 자이시니 이는 그분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라.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왕좌들이나 통치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노라.” (골로새서 1장 15-16절)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 (요한계시록 1장 18절)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그에게 또한 심판을 집행할 권위를 주셨느니라. 이 말에 놀라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듣고 나올 때가 오고 있나니 선을 행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들은 정죄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5장 27-29절)
인생의 모든 불행의 근본 원인은 우연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죽음, 전쟁, 질병 등 인생의 모든 슬픔들의 근원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 원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진리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에메트에서 하나님을 의미하는 첫 글자 알레프를 빼면 히브리어로 “메트” 라고 읽으며 “죽었다” 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불행의 근본 원인인 우리가 하나님과 단절된 것을 해결하신 분으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과 행복이 있는 아버지 하나님께로 갈 수 있게 하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과 단절되어 죽어서 태어나지만 우리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진리를 가진 것이 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인생의 모든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 해결되며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가지게 됩니다.
요한복음 18장 38절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한 질문인 “진리가 무엇이냐?” 는 성경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요한복음 18장 38절)

현재 성경책을 앞에 두고도 다른 곳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빌라도도 “진리” 를 앞에 두고 “진리” 에게 “진리가 무엇이냐” 라고 물어보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리인가” 는 잘못된 물음이며 “누가 진리인가” 가 맞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누구든 성경을 연구하여 예수님께서 진리인 것을 알고 구원을 받으라고 가르쳐줍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5장 39절)
6. 여호와 이름의 숨겨진 의미
아들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구약의 성부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 이름의 의미를 성취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얻으셨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요한복음 5장 43절)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인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호와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보면 십자가의 복음을 암시합니다.



즉 여호와 이름에 숨겨진 의미가 “손을 보라! 못을 보라!” 가 될 수 있으며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손을 암시합니다. 이 의미는 히브리어 원문을 살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숨겨진 의미입니다. 놀랍게도 여호와의 이름이 십자가 사건을 바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름의 숨겨진 의미는 복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제 생각이 아니며 성경 자체가 증거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낸 책입니다. 요한복음의 결론에 예수님의 제자였던 도마가 예수님의 못 박히셨던 손을 보고 예수님을 향하여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복음 20장 27-28절)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책입니다. 요한복음에서 하이라이트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라는 도마의 최고의 고백이 나오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고백이 도마가 예수님 손의 못 자국을 보는 장면에서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