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계시록 4장부터 교회 (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음
요한계시록의 전체 아웃라인을 요약하는 구절은 요한계시록 1장 19절입니다.
“네가 본 것들과 지금 있는 것들과 이후에 있을 것들을 기록할지니”
1. 네가 본것들: 요한계시록 1장에서 본것들
2. 지금 있는 것들: 현재 교회 시대 (요한계시록 2장에서 3장)
3. 이후에 있을 것들: 요한계시록 4장부터 22장까지 앞으로 있을 일들
참조:
요한계시록 해석의 원칙과 전체 내용의 요약
• 이 내용은 Oxford Bible Church 의 Derek Walker 목사님의 책 A Chronological Commentary on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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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2장과 3장에서는 예수님의 오직 관심사는 교회입니다. 계시록 2장과 3장은 교회시대에 존재할 모든 교회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말씀입니다. 저는 계시록 2장과 3장에 등장하는 일곱교회에 대해 글을 썼었고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참조: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요약 및 에베소 교회 (요한계시록 2장)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은 2000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교회들을 대표하는 일곱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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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4장부터 교회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로 바뀌게 됩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바라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더라. 내가 들은 첫 번째 음성 곧 나팔 소리같이 내게 이야기하던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반드시 일어날 것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더라”(요한계시록 4장 1절)
"이 일 후에" 와 "이후에 반드시 일어날 것들" 이라는 표현은 그 이전과는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4장에 나오는 천상의 장면에는 24장로가 등장합니다.
“또 그 왕좌 둘레에 스물네 자리가 있고 내가 보니 그 자리들 위에 스물네 장로가 흰옷을 입고 앉아 있는데 그들이 머리에 금관을 썼더라”(요한계시록 4장 4절)
성경에서 ‘장로’를 지칭하는 단어는 항상 사람을 의미하며, 천사는 장로가 될 수 없습니다. 이 24장로는 교회를 대표하며, 요한계시록 6장에서 시작되는 환난기 이전에 이미 하늘로 옮겨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관련 내용은 제 이전 글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참조: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24 장로는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2-3장에서 교회 시대가 끝이 나고 계시록 4장부터 펼쳐지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천상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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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장부터 3장까지 교회를 지칭하는 그리스어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는 총 23번 등장합니다. 계시록 1장에서 4번, 계시록 2장과 3장에서 19번 나옵니다. 그러나 그 후로 ‘ 교회 (에클레시아)’ 라는 단어가 전혀 나오지 않다가 계시록 마지막 장인 22장 16절에 한 번 더 나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번 나오는 ‘교회 (에클레시아)’ 도 환난기나 천년왕국 또는 영원한 천국의 상태 때 언급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계시록의 모든 말씀을 정리하시며 교회에게 권면의 말씀을 하시는 부분에서 사용된 것입니다.
“나 예수는 내 천사를 보내어 교회 (에클레시아)들 안에서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후손이요 빛나는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장 16절)
따라서, 요한계시록 4장부터 18장까지 기록된 7년 환난기에는 '교회(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만약 7년 환난기에 교회가 존재한다면, 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게 하시려는 것이요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5장 25-27절)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오직 교회에 사랑과 관심을 집중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가 지옥 같은 환난기에 있을 것이라면, 예수님께서 단 한 번도 이를 언급하지 않으시고, 어떤 지침도 주시지 않았다는 점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부터는 예수님께서 직접 이 세상에 환난을 가져오는 인을 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신부가 전쟁터에 있는데도 구출하지 않고, 오히려 그곳에 공격을 명령하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환난 통과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환난 가운데서도 신부를 보호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신부를 미리 구출하지 않으시고, 굳이 위험 가운데 두시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환난기에 신부를 두고 예수님께서 그곳을 공격하신다는 생각 자체는 신랑이신 예수님을 모욕하는 행위가 됩니다.
요한계시록 4장 이후부터는 성령 하나님께서 환난기를 지나는 동안 이 지구상에 남아 있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지칭할 때 다른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구체적으로, 교회의 휴거를 목격하고 회개하여 환난기에 예수님을 믿게 된 성도들을 지칭할 때, 미리 휴거된 교회와 구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에클레시아 (ἐκκλησία) 대신 하기오스 (ἅγιος) 라는 헬라어를 사용하십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4장 이후에 등장하는 성도들은 교회가 아니라, 교회와 구별되는 환난기 성도들입니다. 결론적으로, 요한계시록 4장 이후에는 교회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없다고 보는 것이 성경적이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추론입니다.
3. 환난 후 휴거는 아무런 목적이 없으며 율법주의를 양산 (환난 후 휴거론을 반박)
계시록에 기록된 7년의 환난기는 마치 지옥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에 거하는 사람들을 신속히 제거하실 것입니다.
“{주}의 진노의 날에는 그들의 은이나 그들의 금이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그 온 땅이 그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니 그가 그 땅에 거하는 모든 자를 신속히 제거하리라.” (스바냐 1장 18절)
위의 스바냐 1장 18절에는 이스라엘 땅뿐만 아니라 온 땅이 소멸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 땅에 거하는 모든 자를 신속히 제거하신다고 쓰여 있습니다. 또한, 환난기를 지나는 동안 선택된 유대인들을 제외한 다른 민족들은 거의 모두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너를 흩어서 민족들에게로 가게 하였거니와 그 모든 민족들은 내가 완전히 끝을 낼지라도 너는 완전히 끝을 내지 아니하리라. 다만 내가 적절히 너를 바로잡을 것이요, 전혀 벌하지 않은 채 두지는 아니하리라.” (예레미야 30장 11절)
그렇다면 환난 후 휴거 교리에 따라 생각해보면, 이방인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을 7년 환난기 동안, 무시무시한 전쟁과 여러 자연재해를 피하며 온갖 배고픔, 목마름, 질병을 극복하고 도망 다니다가, 후 3년 반부터는 목숨을 걸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며, 엄청난 운으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죽지 않고 버티는 자들이 7년 환난기 끝에 휴거될 것입니다. 환난 통과를 주장하시는 분들은 환난기 동안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므로 이길 수 있다고 하지만, 성경은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 성도들(교회와는 구분되는 환난기 성도를 의미함, 위에서 설명)을 환난기 동안 목숨을 지켜주신다는 약속은 없습니다. 오히려, 후 3년 반부터는 짐승의 표를 받지 말고 순교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나서 내게 이르시되, 기록하라.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께서 이르시되, 그러하다.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수고를 그치고 안식하게 하려 함이니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뒤따르리로다,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14장 13절)
참조:
요한계시록 7년 환난의 타임라인: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심판의 시간 순서
서론: 요한계시록은 예수님 재림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성령님께서 점진적으로 그 의미를 열어주시는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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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지옥과도 같은 상황을 통과한 아주 소수의 환난기 성도들은 어떤 목적으로 7년 환난기 마지막에 휴거되는 것일까요?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며 버텼다면, 바로 예수님께서 지상에 재림하시며 그들을 구해주실 텐데, 굳이 휴거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또한, 모든 환난을 견뎌낸 후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고 상급을 받을 시점에 굳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곧바로 예수님과 함께 다시 땅으로 내려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마치 번지점프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환난 후 휴거 교리는 교회 시대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은혜의 교리와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환난 후 휴거가 맞다면, 누구든 짐승의 표를 받으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들의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이나 낮이나 안식을 얻지 못하리라.” (요한계시록 14장 11절)
그러므로 환난기에는 짐승의 표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한 가지 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는 마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한 가지 계명을 주셨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현재 은혜의 교회 시대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은 행위가 아닌 은혜의 복음의 교리에 따라 구원을 받습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 2장 8-9절)
만약 지금의 교회가 휴거 없이 환난기까지 이어져, 짐승의 표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계명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이는 다른 복음이 됩니다. 교회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핵심 교리에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장 8-9절)
그러므로 교회의 휴거 이후에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은혜의 교회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험의 시대로 넘어간다고 보아야 합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요한계시록 3장 10절)
환난기는 시험의 때이며, 환난기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에 더해 짐승의 표를 받지 말아야 하는 한 가지 행위가 요구되는 시대가 됩니다. 따라서, 전무후무한 교회의 휴거 사건은 교회 시대의 끝을 알리는 동시에 새로운 환난 시대로 접어드는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 후 휴거는 틀렸습니다. 그리고 천년왕국을 믿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에게 묻습니다. 마지막 7년 환난기 동안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믿음을 지킨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성도들이 휴거된다면, 천년왕국에 들어갈 사람들이 지구상에 남아 있지 않게 되는 것 아닙니까?
4. 예수님 재림의 긴박성
위에서 ‘1. 7년 환난의 목적은 이스라엘의 구원’ 부분에서 설명했듯이, 예수님의 재림은 두 단계로 나눠서 진행될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공중 재림이 있을 것이고, 그때 교회의 휴거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휴거 이후 7년 이상의 환난이 지난 후에 예수님의 지상 재림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환난 후 휴거가 맞다면, 누구나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는 시점부터 7년을 카운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를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의 지상 재림 전에 수많은 징조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약 환난 중간 휴거가 맞다면, 3년 반을 카운트하여 예수님의 지상 재림 시기를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긴박하게 이루어질 것을 암시하며,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르니 항상 깨어 있으라고 가르치는 구절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구절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아, 그 때와 그 시기에 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주]의 날 (환란의 시작)이 밤의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완전히 아느니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때에 아이 밴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임하는 것 같이 갑작스런 파멸이 그들에게 임하나니 그들이 피하지 못하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3절)
“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 속에 있지 아니한즉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를 덮치지 못하리라. 너희는 다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니라.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리자” (데살로니가전서 5장 4-6절)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태복음 24장 36-44절)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2장 39-40절)
교회를 위한 예수님의 공중 재림은 평안한 가운데 밤의 도둑처럼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사건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7년 대환난 이후, 심판을 위하여 교회와 함께 이루어질 예수님의 지상 재림은 누구나 시점을 예상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재림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재림의 긴박성은 환난 전 휴거에 가장 잘 들어맞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재림의 긴박성을 의식할 때 성도들은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며, 예수님을 위해 살고 믿음 생활에 열심을 낼 것입니다.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본성을 가장 잘 아십니다. 사람은 본래 게으르기 쉬운 존재이기에, 예수님의 재림의 임박성을 느껴야 신앙에 더욱 열심을 낼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이 모든 것은 사실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재림의 임박성을 느끼며 더 많은 선을 행하고, 하늘에 더 많은 상급을 쌓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이라고 생각됩니다. 참되게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는 거듭난 사람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날짜를 정해놓고 지구 탈출을 소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경계하며, 휴거의 소망을 품고 하루하루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힘씁니다. 그러므로 환난 전 휴거를 믿는 것이 성도들에게 믿음 생활을 하는 데 가장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5. 갈릴리 결혼 예식은 예수님과 교회의 혼인을 암시하며 환난 전 휴거의 모형
유대인들 혼인잔치는 예수님의 재림과 교회의 휴거를 암시하는 예언적인 행사입니다. 다음은 유대 혼인잔치의 순서입니다.
예비 신랑 신부가 일단 포도주로 혼인 언약을 하게 됩니다. 이때 예비 신부는 혼인 언약 포도주를 거부할 수 있으며 자발적 의지로 포도주를 마시게 되면 혼인 언약이 체결됩니다. 그 후에 예비 신랑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예비 신부를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일단 서로 헤어집니다. 예비 신랑이 예비 신부를 다시 데리러 오는 정확한 시각은 오직 신랑 아버지만 압니다. 그 헤어져 있는 기간동안 예비 신부는 다른 남자를 멀리하고 정결하게 자신을 가꾸며 언제가 될지 모르는 혼인을 위해 준비하게 됩니다. 한편 예비 신랑은 그 헤어져 있는 기간동안 아버지집에서 예비 신부와 함께 살 신혼방을 준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예비 신랑 아버지만 아는 특별히 정한 그 날 새벽이 되면 예비 신랑아버지는 예비 신랑과 함께 예비 신부를 데리러 가게 됩니다. 그 때 예비 신랑은 나팔을 불면서 신랑의 아버지와 더불어 신랑의 지인들과도 함께 예비 신부를 데리러 오게 됩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온 가마에 신부를 태워서 신랑이 아버지 집에 준비해 놓은 신혼집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7일동안 혼인 잔치가 있게 됩니다.
이 내용은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비유로 잘 보여줍니다. 사람이 교회이므로 이해하시 쉽게 저를 기준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먼저, 신부가 신랑의 언약의 포도주를 자발적으로 받는 것은, 성령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제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거듭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맺어진 언약, 곧 복음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의 조화). 이로써 저는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언약은 성령님께서 신부에게 영원히 거하심으로 보증됩니다. 신랑과 신부가 잠시 떨어져 있는 동안, 신랑은 자신의 아버지 집에서 신혼방을 준비하고, 신부는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멀리하며 자신을 정결하게 가꾸게 됩니다. 신랑이 아버지 집에 신혼방을 준비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2절에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을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신 것과 연결됩니다. 또한, 신부가 자신을 정결하게 가꾸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제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성화의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신랑의 아버지만 아시는 그 날이 되면, 신랑은 갑작스럽게 나팔을 불며 자신의 신부를 찾으러 옵니다. 신부는 신랑의 가마를 타고 들려서 신혼집으로 가게 되고, 거기에서 7일 동안 혼인 잔치가 열립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만 아시는 그 날에,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예수님께서 공중 재림하셔서 신부를 데리고 하늘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휴거'를 정확히 묘사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
그리고 7일의 혼인 잔치는 하늘에서는 7년의 혼인 잔치이며 땅에서는 7년의 환난의 기간을 암시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재림과 교회의 휴거가 유대 혼인 잔치와 같다는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유대 혼인 잔치 때 신랑이 언제 신부를 데리러 올지 오직 신랑의 아버지만 그 때를 아는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 때도 그러하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24장 36절)
위의 유대 혼인잔치의 의미를 알고 요한복음 14장에 십자가 전날 유월절 만찬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로 언약을 하시며 하신 말씀을 보면 아름답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말해 주었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받아들여 내가 있는 곳에, 거기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장 1-3절)
당시 유대 갈릴리 혼인잔치 풍습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제자들은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지금 혼인잔치 얘기를 하시고 계시다는 걸 금새 알아 챘을 것입니다. 위의 유대 혼인 잔치를 보면 이것은 예수님과 교회를 미리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나 혼인 잔치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 훨씬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화 《가나의 혼인잔치:언약》... ‘예수님 재림과 휴거 믿음’ 만들다 - 뉴스제이
【뉴스제이】 성경 속 숨겨진 하나님의 언약과 서서히 밝혀지는 ‘예수님 재림과 휴거’에 대한 '거룩한 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가나의 혼인잔치:언약》(Before The Wrath)이 개봉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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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이 세상의 환난 전에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데리러 오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 가나 혼인 잔치가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얻으러 오셨음을 암시합니다.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요한복음 2장 1절)

6. 휴거의 소망으로 위로하라는 성경의 가르침 (환난 중이나 환난 후 휴거라면 위로 불가능)
사도 바울은 휴거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아, 잠자는 자들에 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것은 너희가 아무 소망 없는 다른 사람들 같이 슬퍼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음을 믿을진대 그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결코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하라”(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
만약 환난 중이나 진노 전 또는 환난 후 휴거가 맞다면 우리는 예수님보다 적그리스도를 먼저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환난기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적그리스도에 대항하여 믿음을 지켜야 하며 목베임과 순교를 해야 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무섭고 두려운 일이지 휴거를 듣는다고 위로가 되거나 복된 소망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디도서 2장 13절)
성경은 복된 소망, 즉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교회의 휴거를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선한 행위를 격려하고 성도들의 모임을 권면합니다.
“서로를 살펴보아 사랑과 선한 행위에 이르도록 격려하되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여 그 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브리서 10장 24-25절)
이는 성도들에게 선한 행위를 더욱 열심히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데, 그 이유는 교회의 휴거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상급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교회의 휴거가 이루어진 후, 지상에서는 7년 대환난이, 공중에서는 휴거된 성도들의 선한 행위에 따라 상급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휴거의 소망은 잘못된 세상 탈출의 소망이나 현실 도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께서 속히 오셔서 우리를 이 악한 세상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며, 두려운 환난기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과 교회의 휴거를 바라는 것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복된 소망이 아니겠습니까? 이 복된 소망이 있기에, 자연재해가 넘치고 전쟁과 질병의 소식이 들려도 흔들리지 않고 신앙 생활을 이어갈 힘을 얻습니다.
만약 환난 중이나 환난 후 휴거를 믿는다면, 세상에서 들려오는 두려운 일들을 보며 어떻게 버틸지 고민하느라 휴거 교리가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짐승의 표를 거부하고 순교를 각오해야 하는 상황에서, 당장 가족들과 함께 지옥과 같은 환난기에서 어디로 도망칠지,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로 인해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오직 환난 전 휴거만이 적그리스도보다 예수님을 먼저 만나게 되는 위로와 복된 소망이 됩니다. 이러한 복된 소망은 우리에게 더욱 열심을 내게 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삼위일체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듭니다. 또한, 가족과 주변 성도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복음을 전하며, 성경 말씀을 연구하고, 그리스도를 위한 선한 일에 더욱 힘쓰게 할 것입니다.
*성경이 환난 전 휴거를 지지하는 가장 확실한 이유*
7. 환난 전 휴거를 강력하게 암시하는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
참조:
환난전 휴거-적그리스도 등장 전에 있을 교회의 떠남에 대해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
성경에는 수수께끼 같은 구절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일 것입니다.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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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 개역개정)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라.”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 킹제임스)
개역개정에 ‘배교’라고 번역되고 킹제임스 성경에 ‘떨어져 나가는 일’이라고 번역된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의 단어를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ἀποστασία (아포스타시아, apostasia)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에서 개역개정에는 ‘배교’로 번역되고,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떨어져 나가는 일’로 번역된 헬라어 원문 단어 ἀποστασία (아포스타시아)는 배도나 배교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ἀποστασία (아포스타시아)라는 단어가 ‘물리적 또는 공간적 탈출 (departure)’, 즉 휴거의 의미를 포함한다면, 이는 휴거의 시점에 관한 논쟁을 종결짓는 확실한 성경 구절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의 ἀποστασία (아포스타시아)를 교회의 휴거로 해석할 경우, 교회의 휴거가 먼저 이루어진 후 불법의 사람인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고, 그 이후 7년 환난의 시기가 온다는 환난 전 휴거 교리만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ἀποστασία (아포스타시아)라는 단어에 휴거라는 뜻이 암시되어 있다면, 환난 중 휴거나 환난 후 휴거는 틀리고, 오직 환난 전 휴거만이 맞는 것이 확정됩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이 주장을 헛소리로 치부하지 마시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글을 끝까지 읽고 이성적으로 판단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교회의 휴거 (아포스타시아)가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 (적그리스도)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 (7년 환난기)이 이르지 아니하리라.”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 킹제임스)
마지막 때의 타임라인과 관련해서는 제 이전 블로그 글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참조:
요한계시록 해석의 원칙과 전체 내용의 요약
• 이 내용은 Oxford Bible Church 의 Derek Walker 목사님의 책 A Chronological Commentary on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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ἀποστασία (아포스타시아)는 전치사 ἀπο (아포, apo) 라는 단어와 동사인 ιστημι (히스테미, histemi)란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동사 αφιστημι (아피스테미, aphistemi)의 명사형입니다. ἀπο (아포, apo) 의 뜻은 영어로 “away from” 을 의미하며 단순히 “어디로 부터 떨어져 있는 것” 을 의미합니다. ιστημι (히스테미, histemi) 의 뜻은 영어로 “stand” 즉 결국 명사 ἀποστασία (아포스타시아) 뜻은 단순하게 “away from standing” 이나 “standing away from” 의 뜻으로 명사 “departure” 즉 “(현재) ~에 서 있는 곳으로 부터 떨어짐” 또는 “~로 부터 떨어져 서다” 입니다.
따라서, ἀποστασία (아포스타시아)의 기본적인 뜻은 단순히 "~로부터 떨어짐"입니다. 이는 이 단어가 본래부터 배교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배교라는 뜻으로 쓰이는 영어 단어 apostasy와는 달리, ἀποστασία (아포스타시아)는 단순히 "(현재) ~에 서 있는 곳으로부터 떨어지다"라는 뜻을 가지므로, 문맥에서 "서 있는 곳"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에서 사용된 ἀποστασία(아포스타시아)는 단독으로 쓰였기 때문에, 우리는 문맥에서 "서 있는 곳"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아래는 ἀποστασία (아포스타시아)가 단순히 배교라는 의미에 국한되지 않고, 사전적으로 "어디로부터 떨어지다 (departure) 또는 사라지다 (disappearance)"라는 뜻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약성경에서 ἀποστασία (아포스타시아)라는 단어는 딱 두 번만 사용되는데, 하나는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이고, 다른 하나는 사도행전 21장 21절입니다.
“그들이 너에 대해 곧 네가 이방인들 가운데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할례를 행하여서는 안 되며 또 관례대로 걸어서도 안 된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가르쳐서 모세를 저버리게 한다는 것 (아포스타시아)에 대해 알게 되었도다.” (사도행전 21장 21절)
사도행전 21장 21절에서는 ἀποστασία (아포스타시아)의 의미인 “~로부터 떨어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현재 서 있는 곳"이 “모세”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즉, “모세로부터의 떨어짐”은 영적인 떨어짐, 곧 배교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에서는 "서 있는 곳"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그 문장에서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어서 ἀποστασία (아포스타시아)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분명히 ἀποστασία (아포스타시아)라는 단어는 태생적으로 배교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단어의 구조적·내용적 의미상 단순히 “~로부터 떠남 (departure)”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헬라어 사전에 명시되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더 신뢰할 수 있도록 인터넷 사이트가 아닌 실제 이전 그리스어 사전을 살펴보겠습니다. 위의 사전들에 오렌지 색으로 표시된 부분을 참고하면 ἀπόστασις (apostasis)는 고대 그리스어로 현재 그리스어인 ἀποστασία (apostasia)의 이전 형태였습니다. 즉 ἀποστασία (apostasia)는 ἀπόστασις (apostasis)의 후기 형태로 둘은 정확히 같은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실제 고대 그리스어 사전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전천년주의 환난 전 휴거가 성경적인 이유-파트 3에서 이어집니다.
https://blog.naver.com/gksmh80/223726620645
전천년주의 환난 전 휴거가 성경적인 이유-파트 3
아래와 같이 초기 영어 번역 성경들도 ἀποστασία (아포스타시아)가 배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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